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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경제공동체보다 북핵 해결이 먼저다

설경. 2007. 9. 11. 00:43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북핵이 회복불능의 단계에 진입하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경제개발 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방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의 확인일 뿐이다. 또 북한과의 합의에 따라 미·중·러 3국의 핵기술진이 오는 15일까지 영변 핵 시설 현장을 직접 보고 핵불능화 단계를 논의한다.

미국이 핵불능화 이후 평화체제 보장을 아·태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다시 천명한 것은 북한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한 속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얘기하고자 한 진정한 의도는 한국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의 검증가능한 폐기에 우선적으로 노력하라는 뜻일 게다.

그동안 현 정부는 북핵 해결의 당사자임에도 북핵은 6자회담과 미국에 맡기고, 남북관계에서는 ‘경제협력’에 치중하는 이해 못할 정책을 펴왔다. 남북정상회담의 공식수행원 13명 중 청와대 보좌진 6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7명 가운데 4명이 경제협력과 관련이 있는 부처의 수장들이다. 말이 경협이지 실제로는 대북 지원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이런 탓에 우리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정부가 우방의 정상으로부터, 너무 앞서 가지 말고 북핵 해결, 즉 안보에 먼저 신경을 쓰라는 충고를 듣는 딱한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이러한 주문을 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북핵 통제가 안 될 경우 발생할 핵 물질이나 기술의 해외 유출이며, 다른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 선언이 합의될 경우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전략적인 수준의 사안들이다. 반면 우리가 북핵 해결에 정책 역량을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북핵이 우리 안보에 실제적인 전략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지난 6월 시험발사한 단거리 미사일 3기의 연료와 종류를 확인하고 이는 ‘한국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 핵 기술이 미사일의 탄두로 장착될 정도로 경량화한다면 우리의 안보는 풍전등화가 될 수밖에 없다. 핵무기의 위력은 일반인이 막연히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넘는다. 열은 콘크리트를 녹일 정도며 폭풍은 빌딩을 무너뜨리고 방사능은 낙하지점 주변 수백 ㎞까지를 오염시킨다.

사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의 한반도 정책이기도 하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잠안(hidden agenda)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십년 동안 미국에 평화체제 구축을 요구해 왔다. 평화체제는 협상의 묘를 발휘하면 3국이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공통분모의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의제는 남북경제공동체 구축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인 ‘북핵의 검증 가능한 폐기’다. 북한은 여전히 정권의 안위와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에 제1의 목표를 두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여정이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남북경제공동체를 운운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완화나 북핵 위협의 감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서 보듯이 북한은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태도를 바꿀 수 있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핵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구체적 증거(hard evidence)로 확인해야 남북경협을 확대할 수 있음을 북한에 확실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머리에 이고 있는 상태에서의 경제공동체 구축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선택권은 북한에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지 아니면 아직도 혁명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는 핵 불능화에 대한 앞으로의 태도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유영옥 / 경기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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