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매경시평] 대학교수들의 이기적 태도

설경. 2007. 9. 10. 00:38
교육인적자원부가 입학시험에서의 내신 반영률이 낮은 대학들을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반영률이 가장 낮은 대학은 정원을 줄이겠다고까지 했다.

대학들이 내신 성적을 낮게 반영하려는 것은 그것이 학생들의 실력을 변별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내신 점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평등과 정의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야 살아 나갈 수 있는 대학들로선 당장 곤혹스럽다.

교육부가 그렇게 내신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겠고, 입시 체계에 대한 영향도 걱정스러울 터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점점 짙게 보여온 '포위 심리'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 까닭은 정부가 아주 엄격하게 통제해서 생산성이 아주 낮은 현재의 교육 체계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입시에 내신을 반영하는 조치는 애초에 생산성이 낮은 공교육을 지키려는 방안으로 도입되었다.

이제 우리는 공교육 보호를 위해서 내신의 반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공교육은 왜,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가.

내신 제도의 지지자들이 선뜻 인정하는 것처럼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중ㆍ고등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려가는 사태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교육보다 시장의 사교육이 훨씬 효율적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교육이 허물어지는 사태는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만일 내신 성적이 입시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공교육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공교육을 학생들로부터 지키자는 얘기다.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서 궁극적 가치는 물론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다. 교육기구들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 학생들이 교육 기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들을 고를 권리가 있고 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 기구들은 존재할 명분이 없다. 그렇다면 공교육이 보호되어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재화를 고를 여지를 줄이는 일은 부도덕하고 해롭다. 재화가 교육이고 소비자가 학생들인 경우엔 특히 그러할 터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정부가 나서서 학생들이 학교를 고르지 못하도록 하면서 열등한 공교육을 강요한다. 공교육기구들의 존속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이처럼 교육부가 열등한 공교육 체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부는 예외 없이 생산자들의 포로가 되어 그들 편을 든다. 소수이지만 단합된 생산자들의 힘이 다수이지만 흩어진 소비자들의 힘보다 늘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들과 교수들에게 붙잡혀서 그들의 이익을 돌본다. 교육의 소비자들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이익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내신 문제에 대한 논의가 공교육 체계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교수들도 교육의 생산자들이므로, 현재의 체계 아래서 그들의 이익은 잘 지켜진다. 실은 교수들이 현재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교육 체계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이익에 해로운 내신 반영률은 문제 삼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크게 줄일 공교육의 근본적 개혁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늘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기업들인 대학들의 원시적인 지배구조는 논의된 적이 드물다. 그런 원시적 지배구조가 교수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대학마다 종업원들인 교수들이 실질적 주인 노릇을 하지만, 경영 원리에 어긋나는 그런 지배구조가 경영학 교수들의 비판을 받은 적은 없다.

교육부가 우리 교육의 발전을 막는 곳이라는 얘기는 자주 나온다. 그러나 우리 교육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은 요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생산자들의 집요한 노력이었다. 특히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회 개혁에 관한 논의를 실질적으로 독점하고 여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대학교수들의 집단적 위선이었다.

내신 반영률 자체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대학들과 수험생들에겐 당장 중요한 문제지만, 사회 수준에선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교육 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진정한 문제는 정부가 엄격하게 통제해서 명령 경제에나 맞을 교육 체계 자체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재화를 고른다는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가 교육에도 적용될 때, 우리 젊은이들이 좋은 교육을 누릴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