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경향의 눈]일자리? 문제는 敍事<narrative>다

설경. 2007. 9. 18. 00:34


유병선
“잘 지내지?” “그저 그렇지 뭐.” 언제부턴가 명절 때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첫인사가 짧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은 어떤지, 아이들은 잘 크는지, 부모님은 강녕하신지 등등 궁금한 건 많아도 친구의 안색부터 살피게 된다. 사정을 모르니 “잘 지낸다”는 별 뜻없는 말조차 목젖에 걸린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신상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사오정’(45세 정년) 회원 수칙 1조라고 한다.

서먹함이 조금씩 풀리면 제법 모임에 화색이 돈다. 한 쪽에서 주식해서 재미봤다는 자랑도 나오고, 아파트값이 올랐다는 소리도, 승진턱 내라는 유쾌한 억지도 뒤섞인다. 내세울 것이라곤 명함 한 장뿐인 나는 “아직은 나쁘지 않다”고 자위한다. 일자리를 갖고 있을뿐더러, 그것도 정규직이다. 새 일자리를 찾아 혹은 가게라도 열 목 좋은 자리를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도 아직은 아니지 않은가. 전체 노동자의 45%도 안된다는 정규직의 일원이지 않은가. 불안하기야 하지만 여전히 일 속에서 서사(敍事·narrative)를 이어가는 사치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삶의 이야기’ 단절된 일터-

알량해 보일지 모르지만 노동의 서사는 단순한 위안거리가 아니다. 돈 벌어야 행세하는 승자독식 시대에 서사 타령은 패배자(underdog)의 자기변명도 아니다. 서사란 자신의 삶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경험을 얘기하고자 하고, 그 이야기 속에 어제와 오늘, 내일이 앞뒤가 맞게 하려 애쓴다. 그런데 이젠 일터에서 삶의 이면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노동의 서사가 단절됐다. 사회정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노동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일터에서 서사가 거세되고 있다. 연봉만으로 계산될 뿐 일터가 개인들의 서사를 떠받쳐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규직의 정년 보장 바람이든,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요구든 결국 서사의 문제다. 엊그제 9급 세무직 1200명을 뽑는 시험에 4만명이 몰렸다. 연봉이 반으로 줄어도 좋다는 은행원까지 나섰다고 한다. 돈보다 서사를 중시한다는 얘기다. 석달째 길거리에서 복직을 외치는 이랜드 아줌마 해고자는 이대로라면 비정규직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딸을 위해 싸운다고 했다. 삶이 표류하지 않도록 단단히 닻을 내릴 수 있는 일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점잖은 논객들은 미래를 이끌 청년들이 모험정신이 없다고 걱정하거나, 고용안정을 중시하는 일터를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비아냥하기도 한다. 높은 이직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기업들은 어렵게 입사해서는 이내 사표를 던지는 젊은층의 끈기 없음을 탓하기도 한다. 이는 고용안정을 우선하는 긴 구직행렬이 ‘서사를 요구하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의 시위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상시 구조조정을 내세우고, 돈 잘버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이전보다 조직이 더 슬림해진 것도, 일터의 생산성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퇴출의 불안은 커졌고, 회사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줄었다. 말로는 인재 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뒤에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장기적 관점을 포기하고 단기 승부를 하라”고 닦달한다. 정규직이 고용안정을 뜻하진 않는다.

-퇴출 불안에 경제 악순환만-

일터에서 서사의 상실은 기업이든 조직이든 이익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소속감이 강할수록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경영학의 기본원리가 무시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일만이 아니다. 일자리가 불안한 노동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경제지표는 좋아져도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다. 내수 부진은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며 소비를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그린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모두가 아우성이지만 비정규직만 늘려서는 일하는 빈곤층의 저변만 두껍게 만들 공산이 크다. 노동의 서사를 회복하는 쪽으로 경제의 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추석이 1주일 앞이다. 올해는 친구들이 서먹함을 걷어내면 무슨 화제부터 올리게 될까. 신·변(신정아·변양균)잡기? 마음 줄 곳 없는 대선주자들 얘기? 이제는 주식일까 그래도 부동산일까의 저울질? 발설하든 않든 모두의 명치 끝에는 서사의 상실이 얹혀있지 않을까 싶다. 자신과 제 자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병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