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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을 글쓰기의 전부로 오해-
그 논술공화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로 잘못된 일은 고교생은 물론이고 중학생들까지 ‘글쓰기’라면 곧 논술쓰기이고 논술문이 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으로 유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논술은 글의 특수한 한 형식이고 갈래이지 글쓰기의 전부가 아니다. 대학이 논술을 요구하는 것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지적 이성적 비판적 사고력이 논술문이라는 글 형식을 통해서만 가장 유효하게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는 아닌 게 아니라 대학 교육의 알맹이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력은 논술훈련만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정서적 감응력, 논리와 지식을 뛰어넘는 상상력, 윤리적 감성 같은 여러 능력의 균형계발이 필요하다. 좋은 논술문도 이런 여러 능력의 종합적 발전이라는 토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다양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다양한 글쓰기’의 훈련이다. 글의 종류는 운동화 종류만큼이나 많다. 글은 그 목적, 대상, 주제, 스타일,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신문기사 같은 보도문, 기행문, 편지, 서평, 인터뷰, 수필, 에세이, 상품 광고, 보고서 같은 것에서부터 소설, 시, 동화, 희곡, 우화 같은 창작물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소통 대상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언어적 표현 형식과 스타일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 글이다. 이런 여러 종류의 다양한 글들을 써보게 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 교육의 출발점이다.
짧은 소설과 우화도 지어보고 시도 써보고, 하느님한테 보내는 편지도 써 보게 해야 한다. 논술문은 글의 한 종류이지 글의 전부가 아니다. 논술교육은 여러 종류의 글들을 써보게 하는 훈련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글쓰기 교육을 논술훈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글쓰기 교육의 왜곡이고 파행이다. 그 방식으로는 논술문 작성 능력도 제대로 길러지지 않는다.
-공포 대신 즐거움 느끼게 해야-
논술공화국의 두 번째 큰 문제는 학생들이 논술 때문에 주눅 들고 공포에 사로잡혀 ‘글’이라면 치를 떨게 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인간의 자기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자기 표현은 즐겁고 흥미롭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술 훈련은 고도의 이성적 글쓰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글을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기가 어렵다. 글쓰기이건 무엇이건 간에 ‘즐거움의 경험’은 능력계발과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이다. 그러므로 논술훈련의 ‘왕도’가 있다면 그것은 글쓰기에 대한 공포를 글쓰기의 즐거움으로 바꾸어주는 일이다. 처음부터 딱딱한 논제를 주어 ‘논술’하게 하는 훈련보다는 먼저 학생들의 경험과 삶으로부터 나온 글감,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 그들이 자신 있게 써낼 수 있는 화두를 스스로 선택해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 표현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즐거움에 이르는 길이다. 그런 즐거움을 경험한 학생에게 논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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