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대학로는 포기할 수 없는 문화발전소

설경. 2007. 9. 19. 00:10

						
[한겨레] 연극인이나 인디음악인은 가난하다. 그래서 그들은 임대료가 싼 동네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사람도 꼬인다. 활력이 넘치며, 윤택한 감성이 있으니 당연하다. 정부는 이른바 개발을 시작하고, 개발과 함께 장사꾼들이 모여든다. 당연히 임대료는 오르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싼다.

1960년대 명동이 그랬고, 80년대 신촌이 그랬다. 신촌에서 밀려난 연극인들이 하나둘 모여 조성된 곳이 대학로다. 그런데 지금 대학로는 명동과 신촌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극단 서넛이 이미 비싼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났고, 예닐곱 곳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인디음악의 메카로 부상한 홍대 앞에도 벌써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모양이다.

600년 문화유적 이외에 잿빛 서울을 그래도 볼 만하고, 살 만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대학로와 홍대 앞 문화예술의 거리다. 그곳엔 소비 대신 창조, 규격 대신 파격, 적자생존 대신 공존, 억압 대신 해방이 있다. 가난을 감수하며 자유를 선택한 음악인과 연극인은 이 거리의 창조자이자 주인이다. 보여줄 게 고작 고층빌딩과 경제적 지표밖에 없었던 서울은 두 거리 덕분에 문화적으로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이제 두 거리의 이름은 서울을 넘어 세계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로가 그 창조적 정신과 역량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은 제법 됐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관심을 기울일 때와 일치했다. 2004년 서울시와 종로구가 이곳을 문화지구로 지정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이후 빌딩이 잇따라 들어섰지만, 극단과 소극장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턱없이 오르는 비싼 임대료 탓이었다. 대신 대형 음식점과 유흥업소, 패션상품점이 들어찼다. 기껏해야 개그 등 상업적 공연장만 하나둘 늘었을 뿐이었다. 신촌과 마찬가지로 대학로는 또다른 유흥가로 변질된 것이다.

서울이 대학로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에 필요한 것은 문화발전소이지 차고 넘치는 유흥가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뱅크, 아일랜드 더블린의 클럽타운, 미국 오스틴의 인디그룹 클럽거리를 욕심낼 만도 됐다. 연극인들을 제가 일궈논 땅에서 쫓아내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백년하청이다. 답은 정부와 서울시가 잘 알고 있다. 의지가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