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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며느리와 사위 조건

설경. 2007. 9. 20. 00:35


▲ 조용헌

혼사(婚事)는 중요한 일이다. 명문가를 만들려면 좋은 자손을 얻어야 하고, 좋은 자손을 얻으려면 좋은 유전자를 지닌 배우자와 결혼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혼사를 할 때는 매우 다각도로 상대방과 그 집안을 검색하였다.

충청도 서산에 가면 파평 윤씨 소정공파(昭靖公派) 집안이 있다. 일제시대에 염전도 가지고 있었고, 양조장뿐만이 아니라, 서산 일대에 방앗간을 30개나 운영하던 부잣집이었다. 이 부자 윤씨 집안에서는 며느리를 들일 때 몇 가지 검증 기준이 있었다. 첫째로 며느리 집안에 식구 가난이 없어야 하였다. 자손이 많은 집의 딸을 며느리로 들였다. 시집 와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물 가난이 없어야 한다. 며느리 될 집안사람들의 용모와 아이큐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유명한 인물이 배출된 집안이라면 금상첨화였다. ‘왕대 밭에 왕대 나고 쑥대 밭에 쑥대 난다’고 믿었던 탓이다. 셋째는 그 집안에 대한 주변 평판이 어떠했는가를 참고하였다. 평판이 좋지 않은 집하고는 혼사를 하지 않았다. 넷째는 며느리 될 집안의 산소 자리를 보았다. 외손(外孫)도 발복할 수 있는 자리에 묘를 썼는가를 살펴보았던 것이다. 며느리 집안의 외손은 우리 집안의 친손자가 된다.

며느리 조건에 비해 사위를 얻는 조건은 간단하였다. 사위 될 사람은 그 집안을 별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사위 될 사람이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인가를 먼저 보았다. 둘째는 부지런한 사람인지를 따졌다. 게으르면 딸 고생시킨다. 셋째는 노름을 안 하는가였다. 노름 좋아하는 사람을 사위로 얻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사위를 얻으면, 그 다음에는 처갓집에서 논 몇 마지기를 살림 밑천으로 떼어준다. 그러면 충분히 살림을 유지해 나간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부지런한 사위를 얻어 놓으면 처갓집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달려와서 처갓집 대소사를 성심으로 도와주기 마련이었다. 염전과 양조장, 정미소 30개를 운영하던 윤씨 집안은 잡다한 일이 많았으므로 자기 일처럼 도와줄 일손이 항상 필요하였고, 건강하고 부지런한 사위는 꼭 필요한 일손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 놓고 보면 매우 합리적인 혼사 조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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