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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서울대는 2008학년도 정시 인문계에서 ‘5시간 논술’ 시험을 치렀다. 3개 세트형 문항에 8개 논제를 출제해 총 4600자 분량의 글을 쓰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력 못지않게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도 고려해야 할 만큼 실전 전략을 잘 구사해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법대에 합격한 성시경(경기 평택고)군은 시험 전날 실전 상황을 예상하면서 실천항목을 적었다. 논제→제시문 순서로 읽기, 개요 짜기, 논제에 충실하기 등이 그것. 시험 한 달 전부터 자기 손에 맞는 볼펜 서너 개를 골라 놓기도 했다. 사범대 합격생인 이혜진(광주 살레지오고)양은 수능 시험 이후 썼던 자신의 논술물을 정독하면서 첨삭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체크했다.
합격생들 상당수는 글쓰기 기술이나 기발한 생각보다는 논제에 충실한 글쓰기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논제마다 복수의 질문이 있기 때문에 논제를 이탈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사회대 합격생인 우재준(대구 대륜고)군은 “이것저것 집적거리다가는 한 문제도 제대로 풀 수 없다고 생각해 제시문 분석과 논제 해결 시간의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긴장을 풀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 방식도 다양했다. 시험 전날 충분히 잠자기, 시험 대기시간에 수다 떨기, 시험 시간에 과자 먹기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다른 학생도 나와 다르지 않다’ ‘7~8개의 논제에 대해 평균적 수준의 답안을 작성하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을 달랬다.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안배하느냐도 중요하다. 서울대는 1번 문항(총 3개 논제)을 전반 2시간 동안 풀게 한 뒤 점심시간(1시간)과 대기시간(1시간)을 거친 후 2, 3번 문항(총 5개 논제)을 3시간 동안 풀게 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문제를 배포하기 10분 전에 답안 작성용 원고지를 미리 나눠 주므로 논제별 글쓰기 분량을 원고지에 표시해 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학생마다 편차가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논제에 담긴 요구 사항들을 점검한 뒤 제시문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거꾸로 제시문을 먼저 읽고 논제를 나중에 본 합격생도 있었다. 통합 교과형 논술은 제시문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논제를 먼저 보면 논제의 요구에 사로잡혀 창의적으로 제시문을 독해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도표를 먼저 보면 논제와 제시문의 방향이 쉽게 감지된다는 합격생도 있었다. 이는 논술의 고수에게나 적합한 방식이 다.
답안 작성 요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우선 한 문항 내의 논제들을 순차적으로 완성하는 방법이 있다. 1번 문항을 풀 때 20분 정도 제시문과 논제를 통독한 뒤 3개 논제를 개별 분석하면서 그 답안들을 각각 20~30분에 걸쳐서 작성하는 식이다. 이와 달리 한 문항 내의 논제들을 한꺼번에 완성하는 방법도 있다.
경영대에 합격한 오유찬(대원외고)군은 “한 문항이 3개의 논제로 나뉘어도 3개의 논제 전체가 하나의 글이 되게 했다”고 말했다. 한 문항에 딸린 여러 논제의 답안을 한꺼번에 작성해야 유기적 연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논술 교육에서 자주 강조되는 개요 짜기는 서울대 정시 논술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웠다는 게 수험생들의 공통된 얘기다. 전체적인 글의 틀을 그냥 머릿속에서 구상했다는 것이다. 수시2에서 1개 문항으로 2500자를 쓰게 한 것과 달리 정시에서는 8개 논제를 주었기 때문에 개요를 짤 시간이 없었고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문대 합격생 이아로미(광주 풍암고)양은 “수험생들에게 개요 짜기 용으로 1개 문항당 2장의 메모용지를 나누어 주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전에서 시사 이슈·고전 지식·교과 지식 중 무엇이 가장 중요했느냐는 질문에 합격생들 대부분은 글쓰기 능력이라고 다소 엉뚱한 답변을 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었다.
2500자 논술시험에서 시사 현안 등이 주요한 논거로 활용된 것과는 대조적인 답변이었다.
합격생들은 정시 논술고사에서 성공한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는 말에 ‘자신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합교과형 논술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오히려 합격 답안을 작성하는 길이라고 말한 셈이다.
자연계2008학년도 정시 자연계 논술 고사를 치른 합격생들의 소감은 다소 충격적이다. 적지 않은 합격생들이 “대학의 교양수학과 과학 과목들을 공부해야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미 수학적 풀이과정과 정답, 고교과정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을 요구한 정시 논술을 놓고 본고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후반 시험을 각각 2시간·3시간으로 치른 인문계와는 달리 자연계에선 전·후반 시험을 각각 2시간30분씩 갈라 2개 문항씩 풀게 했다. 중간에 점심시간 1시간, 대기시간 1시간을 준 것은 인문계와 같았다. 문제는 모의 논술고사보다 분량도 크게 늘고 난도도 높아졌다. 2007년 실시했던 모의 논술 고사에서 4개 세트형 문항(수학 1개, 과학 3개)에 총 17개 소논제가 출제된 데 비해 이번 정시에서는 4개 세트형 문항에 소논제 수 27개, 제시문 15개로 늘면서 분량도 길어졌다.
합격생들은 전반 시험에 2개 문항의 분량이 방대하다는 것을 파악해 ‘아는 것만 쓴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의예과에 합격한 김래형(대전 유성고)군은 “절대 시간이 부족해서 아는 문제부터 풀었고 모르는 문제는 내 나름의 추론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했다.
시간에 쫓긴 학생 가운데는 지구 온난화를 다뤘던 1번 문항을 풀 때 근사치만 산출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논제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정밀하게 계산할 경우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웬만한 수식은 건너뛰면서 근사치만 산출한 것이다. 이처럼 근사치만 계산했던 학생들이 상위권 학과에 합격한 걸 보면 서울대 측도 애당초 완벽한 ‘작품’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목할 것은 ‘오뚝이 정신’이 통했다는 점이다. 비록 전반 시험을 제대로 못 풀어도 끝까지 도전해 합격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험생이 점심 시간 후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나만 어려웠던 게 아니었다’고 마음먹고 남은 2개 문항을 풀어 합격한 학생도 있다. 이 학생은 후배들을 위해 “잘 모르는 문제도 논리적 오류를 최대한 줄이면서 다가가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인문계와 마찬가지로 문제 분량이 방대해 자연계 수험생들도 개요 짜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화학 생물학과 합격생인 김선이(광주 대광여고)양은 “여유가 없어 전체 답안의 틀을 생각하면서 일단 써내려갔지만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놓치지는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반드시 써야 할 핵심 사항들만 연습지에 적은 뒤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살을 붙여 나간 학생도 있었다.
답안 작성 과정에서 반드시 도표나 그림 등을 활용해야 하거나 답안지를 깨끗하게 제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떨쳐버리라는 게 합격생들의 얘기다. 시험 막판에 잘못 적은 내용을 발견해 과감하게 엑스 표를 한 후 재작성했는데도 합격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학 측은 외모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자연계 합격생 중 뜻밖에 ‘화장실 전략’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시험 시간 동안 화장실 가는 걸 허용했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 시험 보는 동안 요의를 느끼지 않게 물을 조절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시험 당일 지장을 줄이기 위해 2주일 전부터 가능한 한 아침 일찍 화장실을 다녀오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이런 용의주도함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시험 시간에 편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합격한 학생이 있으니 말이다.
자연계 합격생들은 실전을 치르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논술 학습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문제를 빨리 푸는 훈련을 하는 게 좋다고 한목소리로 답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좌절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풀어나가는 습관을 들이면 고난이도 자연계 논술고사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2009학년도 논술 고사의 난이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를 공식 발표했기 때문에 그동안 금지했던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풀이 과정 또는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고난도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대응전략을 짜둬야 한다. 실전에 대비하기 위해 화학·생물 등을 대학 교재로 공부했다는 합격생의 얘기는 그래서 참고할 만하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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