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영화와 논술] 알렉산더

설경. 2008. 3. 6. 12:29


영화 '알렉산더'의 장면들


윤희윤 성공회대 강사 '이 영화 함께 볼래' 저자
[영화와 논술] 알렉산더

역사는 '기록자의 마음'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서양에서 두말할 나위 없는 영웅이자 동시에 신화적 인물이 된 알렉산더.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는 물론 율리우스 시저, 루이 14세, 나폴레옹, 앙드레 말로의 우상이던 알렉산더는 과연 기록대로 위대한 정복자, 불세출의 영웅이었을까? 2004년에 제작된 올리버 스톤의 영화 '알렉산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플래툰' '7월 4일생' '디어 헌터' 등 베트남 3부작으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고,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역사적 기록 뒤에 있는 개인의 복잡한 내면 심리와 주변 환경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여 역사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이런 태도는 '알렉산더'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주목할 것을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나레이터의 존재다. '사후 40년 알렉산드리아'이라는 자막이 보이는 가운데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는데, 이 노인은 알렉산더의 친구이자 부하였고,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안소니 홉킨스 분)다. "영웅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할 수는 없지! 다시 받아 적게!"라며 '독살'이라는 문구를 '열병'으로 고쳐 쓰게 하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시작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100% 진실이 아니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듯하다.

이처럼 영화는 제3의 화자를 통한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방식으로 알렉산더의 빛과 그림자를 조망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학자 E. H. 카(E. H. Carr)가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한 "역사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시대를 기록한 '기록자의 마음'이다"라는 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 사후 시간적 거리를 두고 역사에 접근하려는 형식을 취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건 올리버 스톤이건 그 누구도 역사적 진실에 100% 도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알렉산더(콜린 파렐 분)는 그리스에서도 변방 취급을 받던 북쪽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부왕 필리포스 2세(발 킬머 분)와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 분) 사이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서로를 증오하고 폭력을 일삼는 부모 밑에서 유년기를 보낸 알렉산더는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진 심약한 아이로 묘사된다. 올림피아스는 남편 필리포스를 경멸하는 대신 알렉산더를 제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와 동일시하며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알렉산더는 13~16세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사 받아 철학과 의학, 과학적 탐구에 흥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문명과 야만을 경계 짓는 스승의 편협한 가르침에 회의를 갖는다. BC 336년, 필리포스가 암살된 뒤 20세로 즉위한 알렉산더는 BC 334년 소아시아로 건너가 고르디움에서 아시아를 통치할 사람만이 풀 수 있다 하는 고르디우스 왕의 매듭을 칼로 끊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시리아, 페니키아, 이집트, 인도 북부까지 점령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가우가멜라 전투(BC 331년)는 역사의 판도를 뒤바꾼 전투이자 알렉산더의 천재성을 보여준 전투로 기록된다. 4만 명 대 25만 명이라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우위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는 전투 전 알렉산더의 행동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1만 명이 넘는 병사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 노고를 치하하고 그리스를 위해 목숨을 바쳐 달라고 호소했다는 것. 이 부분은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되며 유명한 '부케팔로스 말 길들이기' 일화와도 연결된다.

마지막 부분은 원정에 지친 장군들이 알렉산더를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하는 장면이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BC 323년 6월, 바빌론에서 열흘간 고열에 시달리다 급사하는데 그때 나이 불과 33세였다. 사인은 열병 후유증, 지나친 음주, 과로, 독살 등 설이 분분하다. 사후 제국은 치열한 다툼 끝에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 등 세 나라로 갈라졌다.

소아시아 입구에서 고르디움의 매듭을 과감히 잘라 버렸기에 아시아의 정복자가 될 수 있었던 알렉산더, 하지만 그가 매듭을 풀라는 신탁을 어기고 성급히 잘라 버렸기에 단명했고, 그의 제국도 조각조각 잘려 나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史實)은 하나일 수 있겠지만 역사의 기록, 해석은 어차피 기록자 혹은 해석자의 마음 아니겠는가?


■더 생각해볼 거리

① 영화에도 등장하는 '부케팔로스 말 길들이기' 외에 정복왕 알렉산더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주는 예로 '울보 알렉산더', '고르디움의 매듭', '디오게네스 일화' 등의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이들 일화가 주는 현재적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② 알렉산더가 12년 원정으로 이뤄낸 동서문명의 교류와 융합을 일명 '헬레니즘'이라 부른다. 이것이 고대 판 세계화, 즉 코스모폴리타니즘인지 약탈자의 점령 명분 혹은 문화적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인지 토론해보자.




[윤희윤 성공회대 강사 '이 영화 함께 볼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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