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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칼럼] 이제는 ‘철학적 검증’이다

설경. 2007. 8. 28. 23:34

[중앙일보 송호근] 대선 후보 이명박. 대선 고지의 오부 능선쯤 와 있는 그는 어떤 리더인가? 좌충우돌의 한국을 깔끔하고 품격 있게 운행해 갈 지도자인가? 1년 동안 치러진 혹독한 공방전을 끝내고 후보는 일단 숨을 고르고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고민은 이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명박호 티켓을 예매할까, 아니면 좀 더 관망할까? 경선 이후 차분해진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구매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범여권의 대표 선수가 아직 링 위에 오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민심의 중추신경을 건드릴 ‘매혹의 결핍’이 더 절실한 이유인 듯 보인다. 마음 놓고 열광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뭘까.

그가 기본체질을 배양한 현대에서의 경험이 말해 줄지 모른다. 경쟁사인 삼성은 꽉 짜인 조직이고 현대는 비교적 느슨했다는 게 경영학자들의 일반적 지적이었다. 지금은 사뭇 달라졌겠지만, 적어도 1980년대 말까지는 그랬다. 직원들의 관심과 감성대가 제각각인, 방대하고 헐렁한 조직을 어떻게 강자로 키워 냈는가? 프로젝트별 투입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사업 목표가 설정되면 태스크포스팀을 투입해 기어이 이뤄 내는 것이 비결이었다. 말하자면, ‘소대형(小隊型) 각개전투’에 능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이 대독일전에서 고전했던 요인이 바로 이 소대형 전투였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 군단형 작전으로의 전환이었다. 다행히 미국은 군단형 작전, 그것도 육·해·공, 보·전·포(步戰砲) 합동작전에 능한 장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세를 총체적으로 읽는 능력과 미래의 맥을 짚는 리더십의 결정판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과 국회의원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시대 흐름에 대한 총체적 독해력을 길렀을 것이다. 그가 선점한 ‘CEO형 지도자’라는 브랜드가 그것을 웅변한다. 그런데도 표심에는 교통체계 개선과 청계천 복원이 이른바 시대정신이나 역사 발전이라는 거시적 흐름에 편입되지 않은 채 하나의 프로젝트로 표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중대한 역사적 계기마다 민중이 서러움을, 서민들이 고통을 얘기할 때 그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60%에 근접하는 지지자들이 과객이 아니라면, 그가 ‘따뜻한 사회’를 외칠 때 감격의 눈물을 쏟아야 하고, ‘풍요한 나라’를 기약할 때 경제적 고통을 잠시 잊어야 한다. 그런데 프로젝트와 시대정신을 잇는 가교(架橋)는 비어 있다. 유권자를 감화시킬 매혹의 결핍 때문인데, 정치적 매혹이란 기능적 필요성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과 맥이 닿을 때 뿜어져 나온다. 마치 5년 전 노무현 후보가 저항의 코드를 만들자 젊은 군사들이 몰려왔던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이런 질문들이 표심의 정박(碇泊)을 지체시키고 있다. 첫째, 그는 6·3세대의 대표 주자다. 그 맹렬했던 4·19세대가 물러간 지금, 유신세대·광주항쟁세대·신세대를 함께 이끌 새로운 역사적 진로를 보여 주는가? 역사의 무게를 벗어던진 신세대는 개성적이고, 광주항쟁세대는 386정치인의 실정(失政)에 주눅 들었고, 노숙해진 유신세대는 사회 곳곳에서 관리능력을 뽐내고 있는데 60년대 세대의 맏형으로 어떤 역사를 얘기하고 있는가? ‘사회통합’은 누구나 내세울 수 있는 통치 목표일 뿐 시대정신은 아니다. 산업화·민주화·혁명에 이어 한국은 어떤 시대를 열어야 하는가? 둘째, 대통령이 죽을 쒀도 매년 5%는 성장한다면, 7% 성장을 내세운 ‘경제대통령’이 그렇게 별난 것은 아니다. 5년 전의 ‘균형담론’은 진로 수정을 원하는 민심에 불을 댕겼다. 확신이 실망으로 증폭된 지금, 멀게는 박정희 정권, 가깝게는 노무현 정권과 구별되는 성장 패러다임과 그 전환의 필연적 근거는 무엇인가? 불도저식 토건작업과도 다르고, 대기업·중소기업의 이중구도와 소득양극화를 해소하는 ‘신국부론’인가? 보수주의적 시장경제의 요체는 무엇이며, 서민의 고통이 줄고 돈이 흐를까? 명쾌한 답이 있어야 ‘경제대통령’의 효력이 연장된다. 이 후보는 한국의 이 눈물겨운 역사 발전 과정에서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주시하고 있는가? 도대체, 이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할 필연적 근거는 무엇인가? ‘철학적 검증’이라는 더 험난한 터널이 네거티브 검증구도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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