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명화로 보는 논술]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설경. 2008. 3. 13. 15:36


〈도판〉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나무판에 템페라, 111×134㎝, 1475~76,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건국대 강사
예술의 르네상스, 애호가 있어 더 빛날 수 있었다
■세기의 스폰서, 르네상스와 메디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꽃의 도시, 피렌체(Firenze)는 그 이름이 이야기하듯 르네상스를 꽃 피운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유럽 상공업과 금융업의 중심지였던 도시 공화국 피렌체는 14세기 무렵 문화의 중심지로도 발돋움하게 된다. 피렌체 번영의 중심에는 금융가문으로 유명한 메디치(Medici)라는 가문이 있었다. 메디치가는 학문을 장려하고 예술 보호활동을 벌여 나갔다. 종교적인 주제의 미술작품으로 교회를 장식하는 데 많은 돈을 기부하고 가문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들을 고용했다. 당시 피렌체의 부요한 상인들과 금융가들 대부분이 이런 활동을 했지만, 피렌체 최고 부자였던 메디치가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메디치가는 '피렌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부터,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e' Medici, 1416∼1469),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과 문화예술을 후원했다. 당시 사람들이 "피렌체에 만약 독재자가 필요하다면 메디치가보다 더 훌륭하고 매력적인 독재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들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정계와 재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를 선도했다. 또 네 명의 교황을 배출해 종교계까지 장악했다. 화가 미켈란젤로는 15세에 역사상 최고의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이 운영한 조각학교에서 실력을 인정 받아 메디치가의 양아들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테 7세는 미켈란젤로에게 가문의 묘당인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1520∼1534년)을 장식하는 일을 맡겼다. 이 예배당에는 메디치가의 인물들의 초상조각이 있어 300년에 걸친 메디치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예술의 꽃을 피운 메디치가의 세 사람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는 동방의 왕이자 박사였던 세 사람이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새로 나신 아기예수에게 황금과 유황,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예배했다는 마태복음 제2장의 장면을 담고 있다. 사실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주제는 서양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즐겨 다뤄진 인기 주제였다. 겉으로는 이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린 다른 그림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 속에 그려진 세 명의 동방박사의 얼굴은 실제 메디치 가문사람들의 초상이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리는 백발의 동방박사는 메디치 가문의 원로인 코시모, 붉은 망토를 걸친 동방박사는 코시모의 첫째 아들인 피에로, 그 옆의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동방박사는 코지모의 둘째 아들인 조반니이다. 이외에도 메디치 가문의 주요 인물들의 초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조반니 옆의 검정 옷을 입고 서있는 남자는 조반니의 아들인 줄리아노이다. 지금 이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공화국 토스카나의 초대 대공이 된 코시모 데 메디치 1세의 청사사무실로 쓰였던 메디치가의 궁전이다. 1584년에 완성된 이 우피치 미술관에는 메디치 가문이 약 200년간에 걸쳐 주문 제작하고 수집한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소장돼 있다.


■예술가와 패트런의 관계

위대한 예술가와 천재들 곁에는 항상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들을 보호한 후원자가 있다. '패트런(Patron)'이란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경제적,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정신적인 동료이면서 때로는 비평가이기도 한 문화예술 애호가를 말한다. 예술가와 패트런의 관계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들의 관계가 돈독할 때 문화 예술은 더 화려하게 꽃피웠던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다.


예술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살펴보면 맨 먼저 종교단체가 주문자, 구매자로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모든 예술이 신에 대한 봉사로 여겨지던 중세시대에는 예술작품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비용을 대는 후원자가 교회였기 때문이다. 인문주의의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보다 폭 넓은 주제와 다양하고 유려한 표현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제작됐다. 예술의 전성시대라고 하는 르네상스에는 종교와는 무관한 개인 후원자들의 급부상으로 화가들은 좀 더 폭넓은 창작의 기회를 얻었다. 부유한 상인들과 금융업자들이라는 새로운 패트런이 등장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 예술작품들은 세상의 빛을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가운데 메디치가는 르네상스의 거의 전부라고도 볼 수 있다.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건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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