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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가서 뭐해? 실용주의에 동아리가 사라진다

설경. 2008. 3. 15. 17:38


[쿠키 사회] "선배, 동아리가 밥 먹여줘요? 취직 못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2학년 이모씨는 최근 고등학교 후배 김모(경제학부 1년)씨에게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다가 이런 핀잔을 들었다. 이씨가 권유한 동아리는 교내 축구동아리 '황금발'이다.

이씨는 축구를 통해 운동도 하고 선후배간의 친목도 도모하자는 생각에서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는데 후배의 뜻밖의 반응에 놀랐다. 하지만 금세 후배의 마음을 이해했다. 1학년때 학점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2학년 때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없고, 높은 토익점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졸업조차 못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를 반영하듯 신입생때부터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현상이 확산되면서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11시40분, 서울 신촌동 연세대 학생회관앞. 길 양쪽에 복싱, 검도, 기독교, 연세춘추, 재즈 등 대학 동아리 회원들이 책상 17개에 나눠 앉아 신입 회원들을 모집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신입생들은 제 갈 길 가기에 바빴고, 관심을 보이는 신입생들이 없자 기존 회원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에 여념이 없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통계학과 2학년 이모(20)씨에게 동아리에 관심이 없냐고 묻자 "솔직히 대학 써클이 재미는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취업이 더 급하다"면서 "공부할 시간에 동아리에 쫓아 다니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근처 식당에서 공인회계사(CPA) 관련 서적을 보고 있던 경영학부 1학년 오모(20)씨는 "동아리가 다 뭐냐. CPA에 빨리 붙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1학년부터 열심히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들어 문을 닫는 동아리도 속출하고 있다. 20여년 된 전국연합 대학생 아마추어 천문회는 2005년 이후 회원 70%가 줄었다. 전국 20개 대학에서 활동 중이던 이 동아리는 최근 6개 대학에서 간판을 내렸다. 연세대는 3년 사이 사회과학계열 학회 동아리 2개가 문을 닫았다. 이들은 전체 20명회원을 채우지 못해 자진 해산했다. 경희대도 최근 바둑 동아리 '기우회'가 폐쇄됐다. 지방대인 충북대는 적십자봉사단과 서예관련 동아리가 사라졌다.

고려대 연합동아리 집행부 김진혁씨는 "동아리 회원들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면서 "이제는 동아리마다 회원들이 적어 동아리 활동을 조정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학생지원처 학생지원과 장진민씨는 "예전에 느끼던 대학 동아리의 꿈과 낭만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라며 "신입생때부터 취업에만 매달려 멋을 잃어가는 학생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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