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문화의 상징,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타버린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잿더미로 남은 남대문의 모습도 비참하지만 더욱 놀랍고 참혹한 것은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오던 방화범이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는 점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범인의 인식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었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끔찍한 그의 말에 온 국민은 다시 치를 떨었고, 어떤 이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이 시대, 이 나라에 태어나 살게 된 것이 부끄럽고 통탄스럽다"고 하였다.
'존재한다'는 개념은 오로지 '물질적인 것'으로, '감각적인 것'에만 의존하는 인간을 가리켜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문제의 인간'이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의 인간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오로지 물량적이고 감각적인 기준에 의해 계산하며 사는 인간으로, 결국은 이 세상에서 '희망'을 저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증오와 복수에 불타는 자폐적 성격을 지닌 범인은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70여년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떤 모양으로든 그가 이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직·간접적인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증오와 복수에 불타는 자폐적 성격을 지닌 범인은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70여년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떤 모양으로든 그가 이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직·간접적인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이, 국보 1호를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시민의 품'에 안긴 정치인은 물론 이를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전시행정은 이미 그러한 화를 예시하고도 남았다.
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척도는 그들이 '자기 민족의 문화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척도는 그들이 '자기 민족의 문화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제1의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자부하는 우리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실체를 철저히 외면해 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네마다 즐비한 '성형외과', 학문의 요람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 인문학이 이를 말해준다. 심지어 정신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종교마저도 마치 종교박람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내면적 세계보다는 외적 성장을 선교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 이 시대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시각(視覺)의 표층화(表層化) 현상'은 이미 21세기 문화를 읽는 키워드의 하나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도를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실용주의 정부'가 단순히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 여긴다면 우리의 선택은 또 한 번 어리석은 게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기쁨과 보람'이라고 한다면, 그 기쁨과 보람은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나로부터 '끝없는 만남의 신비'를 이루어내는 데 있는 것이지, 결코 1인당 국민소득(GNP), 국내총생산(GDP)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조광호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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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을 '기쁨과 보람'이라고 한다면, 그 기쁨과 보람은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나로부터 '끝없는 만남의 신비'를 이루어내는 데 있는 것이지, 결코 1인당 국민소득(GNP), 국내총생산(GDP)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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