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과학과 논술]DDT 위험성 주장한 레이첼 카슨

설경. 2008. 4. 17. 15:20
자연을 침묵하게 만든 DDT, 더이상 기적의 물질 아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거리에 핀 벚꽃과 포근한 바람에서 우리는 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만발한 꽃들 속에 새들의 지저귐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미국 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1907~1964)은 이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 나정민 서울시립대 강사·'과학 교과서 속에 숨어 있는 논술' 저자

↑ 1962년 ?침묵의 봄3이라는 책으로 농약과 살충제의 위 험성을 고발한 여성과학자 레이첼 카슨(1907~1964)/ 조선일보 DB

1958년 1월 레이첼 카슨은 친구인 조류학자 허킨즈로부터 자신이 기르던 새들이 DDT 때문에 죽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DDT는 실험실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살충제 중 하나다. DDT는 말라리아나 황열병을 퍼뜨리는 모기, 발진티푸스를 퍼뜨리는 벼룩을 제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해충 제거에도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농업에서도 대대적으로 사용했다. 1900년대 중반, DDT는 '기적의 물질'이라고 불리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용됐다. 덕분에 DDT의 살충능력을 발견한 스위스의 화학자 뮐러(1899~1965)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 기적의 물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 치명적이다.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물질인 DDT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동물에 흡수된 DDT는 8년이 지나야 절반 정도가 체내에서 분해되며 자연계에서는 반감기가 15년이나 된다. DDT와 같이 동물의 몸 속에서 쌓이는 살충제나 농약 또는 환경호르몬을 '내분비 교란물질'이라고 통칭하는데, 이 물질들이 동물의 몸 속에서 내분비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이 동식물 속에 쌓이는 축적률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DDT와 유사한 PCB라는 농약은 식물성 플랑크톤에 250배가 쌓이고, 이를 먹이로 삼는 동물성 플랑크톤에는 500배,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새우에는 4만5000배, 이 새우를 잡아먹는 물고기에는 83만5000배가 쌓인다. 이렇게 농축된 물질은 동물의 몸 속에서 지방 조직을 파괴하고 칼슘 대사에 장애를 일으키며 생리 기능 장애를 유발시키고, 전신마비나 암 등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인류는 머지않아 봄이 와도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될 위기에 놓였다.

이런 농약이나 내분비 교란물질의 유해성은 1960년 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적의 물질'에 대한 소비는 늘어만 가는 상황이었다. 레이첼 카슨은 연구과정에서 알게 된 DDT의 유해성에 대해 더 이상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한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DDT의 유해성을 입증할 자료를 조사하며 책을 집필했다. 이를 알게 된 화학회사나 정부, 과학자들은 카슨에게 집중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방해공작을 펼쳤다. 이 시기 카슨은 1960년에 진단 받은 유방암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카슨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1962년 9월 DDT의 유해성을 알리는 책인 '침묵의 봄'을 출판한다. 이 책이 출판되자 화학회사와 일부의 과학자들은 카슨의 주장에 반박하는 '침묵의 가을(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가을이 되어도 곡식들을 수확할 수 없다는 의미의 제목)'이라는 책을 내놓으며 지속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렇게 DDT의 문제가 쟁점화 될수록 카슨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루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안을 통과시킨다. 뒤를 이어 암연구소에서 DDT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미국 주정부에서 DDT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은 이 과정을 끝내 지켜보지 못하고 1964년, 56세에 유방암으로 사망한다.

죽기 1년 전인 1963년 4월, CBS 방송 연설에서 레이첼 카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인류는 지금 역사상 유례없는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다. 우리는 미숙하고 유치한 자연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성숙한 눈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만 우리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은 둘 중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조화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은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성을 경고한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도 깊은 울림이 되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나정민 서울시립대 강사·'과학 교과서 속에 숨어 있는 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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