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한 주의 시사 키워드] 살(殺)처분

설경. 2008. 4. 17. 15:27
아파도 말로 표현 못하는 동물도 괴로워

최근 전북 김제와 전남 영암의 씨암탉 농장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AI )가 또 발생했다고 합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AI 확산을 막기 위해 김제 농장의 씨암탉 18만여 마리와 전남 영암 농장의 씨암탉 1만8000여 마리를 '살(殺)처분'하기로 했어요.

살처분이란 말은 쉽게 풀어 '모두 죽인다'는 뜻입니다. 따뜻한 봄날, 피 튀기는 살육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조선일보 DB

'우리들은 모두 야차가 돼 살아 있는 닭들을 양계장에서 꺼내 자루에 담았다. 생지옥이 따로 없는 아비규환이었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야차(夜叉)는 민간 설화에서 '두억시니'라고 부르는데 '모질고 사나운 귀신의 일종'을 뜻합니다. 살처분 당시 그는 짐승의 탈을 썼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어느 농가에서 돼지 콜레라가 발생하자 돼지 160만여 마리를 살처분한 일이 있습니다. 군 병력까지 동원됐는데 상당수가 산 채로 매장됐다고 해요. 그러나 이튿날 생매장된 돼지가 흙을 헤집고 나오더란 겁니다. 살려는 본능 하나로 밤새 땅 속을 기어 나온 돼지들의 생명력은 놀라웠어요. 하지만 이들의 '엑소더스'를 반긴 것은 가혹한 몽둥이였습니다. 밤새 땅을 파느라 기진맥진한 돼지들은 다시 잔인하게 매를 맞고 피투성이로 죽어갔다고 해요.

과거 데카르트가 살던 시대에 인간은 동물과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결코 물질세계의 일부가 아니라고 봤어요. 비록 몸은 썩어 사라져도, 마음은 온전히 존재하는 영혼의 일부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몸은 기계와 다를 게 없다고 봤습니다. 아픔을 느낀 것은 오직 인간이며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봤던 것이지요. (마크 롤랜즈의 '동물들의 역습' 참조)

정말 그럴까요? 인간과 동물은 서로 다른 존재며 고통이나 통증을 느끼는 방식도 다를까요? 동물실험학에서 고통과 맞선 동물들은 신경이 곤두서고 극도로 예민해져 으르렁거리고 흥분하며 동요하고 주변을 경계한다고 해요. 심장이 뛰고, 맥박수가 올라가며 호흡이 가빠지고 오줌을 싸기도 한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안과 고통, 통증 반응 양식이 인간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공포와 통증의 정도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뿐이겠지요. 벚꽃이 날리는 봄날, 공장형 대규모 축산시설에서 항생제, 성장 호르몬, 화학약물로 자라난 동물들의 살처분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김태완 맛있는공부 기자 kimch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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