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남'과 '평범녀'의 로맨스… 그 깨지지 않는 공식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는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장르 중 하나다. 로맨틱 코미디는 몇몇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미남이나 미녀가 등장하고 둘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연인이 된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바뀐다거나, 남녀의 역할이 바뀔 수는 있지만 큰 이야기 줄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일까? 로맨틱 코미디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과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왜 로맨스는 대부분 코미디로 표현되는 것일까?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대해 생각해보자.
'노팅힐''브리짓 존스의 일기''프리티 우먼'과 같은 영화들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속한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는 영화 장르는 몇몇의 공식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지위에서 차이가 나는 두 남녀가 만난다. 각자 자라온 가정의 환경이나 계층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사랑싸움이라고 불릴만한 다툼을 경험하고 난 후 결국 둘은 연인이 되거나 부부가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는 마침내 둘이 잘 되는 만사형통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라는 장르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명사격인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라는 작품은 이 파생 관계를 잘 보여준다. 대재벌의 딸이 아버지의 결혼 강요에 저항하기 위해 호화 선박에서 뛰어내린다. 자신의 애인을 찾아 떠나겠다는 철부지 딸은 뉴욕으로 가는 먼 여정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바로 가난하고 무능한 신문기자. 신문기자는 그녀가 대부호의 딸임을 눈치 채고 뉴스거리를 얻기 위해 그녀의 곁에 머문다.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 없는 부잣집 딸과 뉴스가 필요한 신문기자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하지만 점점 그들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엔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개봉 당시 엄청난 흥행을 거둔 이 작품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가 그렇듯 이러한 연애담은 신분의 격차를 넘어선 결혼이 가능하리라는 환상을 준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탄생을 점차 극대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경제적 빈부 격차와 연관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경제적,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조명한다. 사회적 배경의 격차가 두 사람의 성장 환경의 차이로 단순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기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프리티 우먼'은 대재벌과 거리의 여자가 맺는 로맨스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매우 낭만적으로 현실화 시킨다. '노팅힐'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여배우와 작고 초라한 서점 주인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에는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바라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고스란히 표현된다는 점이다. 상류계층의 연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로 묘사된 '노팅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가 만나는 중세 시대 '왕자'의 위치에 현대에는 대재벌과 유명 스타가 놓여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 특히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화려한 쪽에 놓인 자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직업이나 가치를 숭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매일 밤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에서도 발견되는 법칙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나 두 남녀가 만나 연인이나 부부가 되는 순간에서 끝난다. 두 남녀가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사다난하게 보여주지만, 사실상 그 과정에는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그 결여는 의도적인 배제에 가깝다. 현실의 연애나 결혼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들은 생략한 채,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코믹한 다툼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난 후의 현실적 문제 역시 다루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의 기쁨을 전해주는 환한 미소만이 강조된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에서 현실을 빼고 환상만을 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대중들이 영화 속에서 연애의 현실이 아니라 환상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안에는 대중의 요구를 채워주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생각해 볼 문제
①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들과 로맨틱 코미디를 비교해보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②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이 어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었는지 나열해 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해보자.
③대중들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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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는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장르 중 하나다. 로맨틱 코미디는 몇몇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미남이나 미녀가 등장하고 둘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연인이 된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바뀐다거나, 남녀의 역할이 바뀔 수는 있지만 큰 이야기 줄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일까? 로맨틱 코미디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과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왜 로맨스는 대부분 코미디로 표현되는 것일까?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대해 생각해보자.
'노팅힐''브리짓 존스의 일기''프리티 우먼'과 같은 영화들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속한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는 영화 장르는 몇몇의 공식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지위에서 차이가 나는 두 남녀가 만난다. 각자 자라온 가정의 환경이나 계층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사랑싸움이라고 불릴만한 다툼을 경험하고 난 후 결국 둘은 연인이 되거나 부부가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는 마침내 둘이 잘 되는 만사형통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라는 장르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명사격인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라는 작품은 이 파생 관계를 잘 보여준다. 대재벌의 딸이 아버지의 결혼 강요에 저항하기 위해 호화 선박에서 뛰어내린다. 자신의 애인을 찾아 떠나겠다는 철부지 딸은 뉴욕으로 가는 먼 여정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바로 가난하고 무능한 신문기자. 신문기자는 그녀가 대부호의 딸임을 눈치 채고 뉴스거리를 얻기 위해 그녀의 곁에 머문다.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 없는 부잣집 딸과 뉴스가 필요한 신문기자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하지만 점점 그들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엔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개봉 당시 엄청난 흥행을 거둔 이 작품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가 그렇듯 이러한 연애담은 신분의 격차를 넘어선 결혼이 가능하리라는 환상을 준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탄생을 점차 극대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경제적 빈부 격차와 연관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경제적,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조명한다. 사회적 배경의 격차가 두 사람의 성장 환경의 차이로 단순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기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프리티 우먼'은 대재벌과 거리의 여자가 맺는 로맨스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매우 낭만적으로 현실화 시킨다. '노팅힐'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여배우와 작고 초라한 서점 주인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에는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바라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고스란히 표현된다는 점이다. 상류계층의 연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로 묘사된 '노팅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가 만나는 중세 시대 '왕자'의 위치에 현대에는 대재벌과 유명 스타가 놓여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 특히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화려한 쪽에 놓인 자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직업이나 가치를 숭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매일 밤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에서도 발견되는 법칙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나 두 남녀가 만나 연인이나 부부가 되는 순간에서 끝난다. 두 남녀가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사다난하게 보여주지만, 사실상 그 과정에는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그 결여는 의도적인 배제에 가깝다. 현실의 연애나 결혼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사건들은 생략한 채,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코믹한 다툼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난 후의 현실적 문제 역시 다루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의 기쁨을 전해주는 환한 미소만이 강조된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에서 현실을 빼고 환상만을 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대중들이 영화 속에서 연애의 현실이 아니라 환상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안에는 대중의 요구를 채워주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생각해 볼 문제
①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들과 로맨틱 코미디를 비교해보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②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이 어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었는지 나열해 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해보자.
③대중들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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