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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VS 서울 과학영재학교 … ‘두뇌’ 잡기 위한 두뇌싸움 시작됐다

설경. 2008. 5. 2. 13:47
[중앙일보 백일현.배노필] 서울과학영재학교
주요대 특별전형 협의 "서울 영재 서울로 오라"

한국과학영재학교
KAIST부설기관 추진 "우린 5년 노하우 있다"


부산에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 1학년 전호선(16)군은 한 달에 한 번씩 KTX를 타고 서울 일원동에 사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 전군은 지난해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학교에 진학했다. 서울 토박이로 불편한 점이 많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군은 "화학이 재미있어서 화학 연구자나 교수가 되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고등학교가 이곳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지난해 입학생은 144명. 이 가운데 서울 출신이 46명으로 가장 많다. 부산 출신은 17명뿐이고 경기도 45명을 포함, 전국에서 학생이 몰렸다.

내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서울에도 과학영재학교가 생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30일 서울과학고를 서울과학영재학교로 지정했다. 올 6~8월 입학 전형을 거쳐 120명을 선발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뿐 아니라 1, 2학년도 지원할 수 있다. 내년 3월부터 수업을 한다. 교과부 박종용 인재정책실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감안하고 영재학교 간 경쟁으로 영재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영재학교도 경쟁시대=영재학교에는 학년이 없다. 학급마다 정해진 시간표도 없다. 학생들은 대학처럼 스스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한다. 170학점만 따면 언제든지 졸업할 수 있다. 학교는 학생 수준에 맞춰 대학 난이도의 수학·과학을 가르칠 수 있다. 잠재력이 큰 학생들이 몰리는 만큼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생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교과부가 서울에 과학영재학교를 세우는 것은 경쟁을 통해 영재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다.

두 학교는 벌써 경쟁을 시작했다. 서울과학영재학교는 수학·과학 등 전문교과 수업을 영어로 진행할 계획이다. '영어 몰입수업'에 주력하려는 것은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와의 차별화 전략 중 하나다. 서울시교육청 허동 과학영재교육과장은 "세계적 영재를 육성하는 데 영어는 필수"라며 "전문교과 수업 100% 영어 강의를 목표로 교사진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교사평가 제도도 도입한다. 교사의 기본 근무연한을 1년으로 하고, 매년 인사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근무 유예를 결정할 계획이다. 실력이 안 되는 교사를 매년 퇴출시키려는 것이다. 2011년까지 교원 중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 비율을 85%까지 높일 계획이다.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는 KAIST부설기관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학교 진병화 교감은 "KAIST 부설 학교가 되면 KAIST의 우수 교수진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고, 교육과정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입학 경쟁 치열해질 듯=서울과학영재학교는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와 달리 4단계 전형을 거쳐 입학생을 뽑는다. '영재성 평가'를 새롭게 도입한 것이다. 홍달식 서울과학고 교장은 "지원자의 사고력·창의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라며 "서술형 평가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전형 과정에서 영어 능력 평가를 포함한 기초학력 검사가 있고 최종적으로 2박3일의 합숙 과학캠프를 통해 120명을 선발한다.

두 학교 영재학생들 간의 대학 진학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수능·내신과 무관하게 KAIST와 포항공대에 각각 100명, 30명씩 특별전형으로 진학이 가능하다. 서울대 특기자 전형에 지원해 수능 성적 없이 진학할 수도 있다.

서울과학영재학교도 KAIST 등과 특별전형 선발을 협의할 계획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과거 한국과학영재학교가 KAIST 특별전형 정원을 받을 때도 다른 과학고들이 불리해진다며 반발이 심했다"며 "향후 대입을 놓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과학고·대전과학고도 영재학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과학고가 영재학교에 밀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백일현 기자 < keysmejoongang.co.kr >
외국에서는
"획일주의가 영재 교육 최대의 적"
교과서 없애고 평가는 통과·낙제뿐


외국의 과학영재학교로 손꼽히는 곳은 미국 뉴욕의 공립고교인 브롱크스 과학고다. 수학·과학·기술 분야의 영재를 육성하는 이 고교에서만 멜빈 슈워츠(물리학·1988년), 러셀 헐스(물리학·93년) 등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영어·세계사·외국어 등도 함께 배우지만 전체 수업 시간에서 수학·과학의 비중이 60%를 넘는다. 중 2~3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브롱크스 과학고가 실시하는 수학·언어 영역 검사를 치러 선발된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과학·수학고(IMSA: Illinois Mathematics and Science Academy)는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영재학교다. 교사들의 획일적 수업을 없애기 위해서다. 연구 수업을 중심으로 통과·낙제(Pass·Fail)로만 학생을 평가한다.

또 학생들이 매주 한 차례 학교 주변의 페르미 연구소나 일리노이 공대의 지도 교수를 찾아가 과제를 수행케 하는 연구 중심의 수업 방식을 고집한다. 이 학교는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교원만 채용한다.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주정부의 지원금으로 재정을 충당하지만 기업과 외부 공익재단의 기부금도 수시로 받는다.

이공계 분야가 강한 러시아에서 수학·과학 영재를 육성하는 과학고로 유명한 곳은 콜모고로프 과학고다. 이 학교 교사진의 절반은 모스크바 대학 겸직 교수다. 120명의 교사가 350명의 학생을 맡는다. 소규모 학생들로도 수업을 꾸릴 수 있는 등 밀도 높은 교육을 한다. 고교생이라기보다는 '예비 대학생'으로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전국 단위의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때 교사진이 러시아 전역으로 파견돼 학생 선발에 직접 나설 만큼 영재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김미숙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소장은 "한국에서는 대학 입시가 고교 교육과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며 "초등학생 때 선발된 영재들이 고교생이 되면 입시 위주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입 준비에 몰두하게 되면서 영재 교육 본연의 수월성 교육이 퇴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내신·수능에 신경 쓰지 않고 과학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영재고의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미국에서 브롱크스 과학고가 유명하지만 일반 명문 사립고에서 더 많은 과학 영재들이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춰 상상력이 뛰어나고 집필에도 능한 과학자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배노필 기자 < penba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