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적 사유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근대 이전에는 기독교가 근대 이후에는 과학이 가치의 주된 원천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이성이 신의 권위 아래 놓여 있던 중세와 근대 초까지는 개인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모든 의사결정이 궁극적으로는 종교적 원리나 원칙에 근거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탄생과 인간 이성의 자율성이 확보된 이후에는 종교적 합리성이 아니라 이성적 합리성이 점차 모든 의사결정의 원천으로 자리잡아 갔다.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발전과 이에 기초한 기술의 발달이 특히 두드러짐에 따라 과학적 합리성은 이성적 합리성을 대변하다시피했다. 인간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근대적 사유를 이끌었던 철학이 과학을 그 수하에 두고자 했지만, 사변적 사유 중심의 철학은 마침내 과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주의(scienticism)란 물리학에서 이용되는 과학적 방법과 기준이 모든 지식 영역과 인간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 내지 신조를 말한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이 물질적·정신적 차원에서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모든 학문은 과학화를 지향했다. 사회 현상을 다룬 학문 분야가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고, 인문학마저 인문 '과학'을 표방하고 과학화를 지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여겨졌던 객관성과 보편성이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과학과 인간, 과학과 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62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발간된 이후의 일이다. 오늘날 인간을 비롯한 생물을 DNA적으로 낱낱이 파헤치고 생명체를 복제하는 등 과학의 성과는 여전히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고 있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절대적인 믿음, 신조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과학은 아직 발전의 여지가 있으며 과학적 진리가 좀더 완벽해지는 그날에 가서는 과학으로서 규명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날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과학에 모든 것을 맡기는 건 너무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최근 미국의 쇠고기 수입 허용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여기에 과학이 개입되어 있다. 통계학이나 의학이 관여되어 있고, 경제학이 그렇고 또 치안 '과학'이 그렇다. 우리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의 '과학적' 기준에 따라 쇠고기 협상을 했으며 '과학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어떤 이는 확률적으로 볼 때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이니, 이 정도면 항공기에 탑승해서 사고를 당할 확률에 비해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으로 의심되면 소비자인 국민이 안 사먹으면 될 것이라고 '(경제)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경찰청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동하거나 사주한 범죄자를 가려내어 국민 불안을 '과학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소위 전문 과학자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나서서 소위 광우병 괴담은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과학이 편향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쇠고기 수입 허용 측에서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에 못지않게 그에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 역시 만만치 않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주의의 한계이다. 인간의 삶은 외부의 객관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따라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가치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전체로서의 국민이 내려야 하는 결단은 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나 주권이라는 '비과학적인' 혹은 '과학과 무관한' 가치에 있는 것이다. 개별 분과 학문과 영역에서 과학주의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과학주의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라.
2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과학주의의 한계와 연관지어 논의해보라.
3 우리 사회의 과학주의의 병폐를 예를 들어 비판해보라.
<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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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이 물질적·정신적 차원에서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모든 학문은 과학화를 지향했다. 사회 현상을 다룬 학문 분야가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고, 인문학마저 인문 '과학'을 표방하고 과학화를 지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여겨졌던 객관성과 보편성이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과학과 인간, 과학과 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62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발간된 이후의 일이다. 오늘날 인간을 비롯한 생물을 DNA적으로 낱낱이 파헤치고 생명체를 복제하는 등 과학의 성과는 여전히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고 있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절대적인 믿음, 신조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과학은 아직 발전의 여지가 있으며 과학적 진리가 좀더 완벽해지는 그날에 가서는 과학으로서 규명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날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과학에 모든 것을 맡기는 건 너무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최근 미국의 쇠고기 수입 허용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여기에 과학이 개입되어 있다. 통계학이나 의학이 관여되어 있고, 경제학이 그렇고 또 치안 '과학'이 그렇다. 우리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의 '과학적' 기준에 따라 쇠고기 협상을 했으며 '과학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어떤 이는 확률적으로 볼 때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이니, 이 정도면 항공기에 탑승해서 사고를 당할 확률에 비해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으로 의심되면 소비자인 국민이 안 사먹으면 될 것이라고 '(경제)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경찰청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동하거나 사주한 범죄자를 가려내어 국민 불안을 '과학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소위 전문 과학자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나서서 소위 광우병 괴담은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과학이 편향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쇠고기 수입 허용 측에서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에 못지않게 그에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 역시 만만치 않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주의의 한계이다. 인간의 삶은 외부의 객관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따라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가치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전체로서의 국민이 내려야 하는 결단은 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나 주권이라는 '비과학적인' 혹은 '과학과 무관한' 가치에 있는 것이다. 개별 분과 학문과 영역에서 과학주의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과학주의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라.
2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과학주의의 한계와 연관지어 논의해보라.
3 우리 사회의 과학주의의 병폐를 예를 들어 비판해보라.
<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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