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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삶이여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Mercedes Sosa

설경. 2008. 6. 4. 10:15

[한겨레] 논설위원

불가사의했다. 도시는 체포와 학살, 사찰과 고문으로 신음하는데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들/ 그리고 너의 집과 나의 길/ 피곤하지만, 행진을 할 수 해준 나의 다리/ 이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이여, 감사합니다.” 게다가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던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의 대모, 비올레타 파라(칠레)가 작곡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어머니라는 메르세데스 소사(아르헨티나)가 부른 노래라니!

당시 칠레는 3천여 명의 시민을 학살했고, 체포와 구금 고문 등을 피해 100만여 명이 고국을 등지게 한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아래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선 군부정권의 더러운 전쟁 속에서 3만여 명이 피살 혹은 실종된 상황이었다. 산다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이고 투쟁이고 저항’이었다. 그럼에도, 삶에 감사하는 이 노래는 독재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이었다!

이 오래된 의문과 경탄이 요즘 다시 살아난다. 진압 경찰의 방패에 찍히고,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물대포에 고막이 찢겨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치켜든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타고난 생기발랄은 시청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이르는 너른 광장을 한 달째 춤과 노래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민주주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들은 비장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돌을 들지 않았고, 쇠파이프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비무장의 그들은 흔들리는 촛불이었고, 막히면 비켜가는 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아니라 공권력의 강철대오가 흔들린다. 엄포와 협박을 일삼던 검찰 경찰 정권은 실색했다.

하긴 간난 아기를 태운 엄마들의 유모차 부대가 앞장서고 아이들을 목말 태운 아빠들이 뒤를 따르는데, 막아서면 ‘텔미 춤’을 추고 협박하면 노래나 하라는데, 길이 막히면 주저앉아 장기자랑 노래자랑으로 초여름 밤을 즐기는데, 때리면 그저 얻어터지는 게 제 역할이라는 예비군들이 대열을 보호하는데, 거기에 대고 무슨 짓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노래하는 이들을,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죄로 처벌할까 내란죄로 주리를 틀까. 이렇게 신나고 흥겨운 민주주의가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

한때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입밖에 내려면, 이를 악물고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야 했다. 무차별 구타와 투옥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대개는 그저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신새벽 뒷골목에서, 남몰래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라고 끼적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비장한 것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비장한 민주주의를 행복한 것으로 전복시켰을까. 남미 민중이 그 혹독한 억압과 저항 속에서 ‘삶이여 감사’하다고 노래했던 것은 단지 낙천성 탓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능력, 이웃과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 삶을 사랑하고 즐기는 생기발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거기에 우리의 젊은 벗들은 정의의 감수성과 연대의 힘까지 갖추었다. 그러니 더 행복한 민주주의로 향한 그들의 행진을 어찌 물대포로 막을 수 있을까.

젊은 벗들이여, 감사합니다. 그대는 일쑤 비장하고, 그래서 일쑤 주저앉는 우리에게 희망하는 법을 알게 하고, 서로 연대하고 의지하는 법을 알게 했습니다. 그대의 노래는 나의 노래이며, 그대의 춤은 우리의 춤입니다. 그대들을 우리 곁에 두신 삶이여 감사합니다.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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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Violeta Parra)

 



    ▲ Joan Baez -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드립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alto cielo su fondo estellado
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ciel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i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e de mi bien ama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밤과 낮에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를 들려주고,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는 넓은 귀도 주었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vi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선사하고,
어머니와 친구와 형제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고요.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s cansados
con ellos auduve ciudades y charcos,
playa y des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tuya, tu calle y tu pati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진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당신의 집과 거리, 그리고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 el corazon que agita su mano
q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umano
q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q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에서 멀리 떠난 선함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은 곳을 응시할 때
삶은 내게 그 틀을 뒤흔드는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r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은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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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소사의 대표곡으로는 Kyrie(불쌍히 여기소서),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합니다), Todo Cambia(모든 것은 변하네), Vengo a ofrecer mi corazon(내 마음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Misa Criolla(미사 크리올라 : 인디오 미사곡) 등이 있다.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라틴 아메리카의 목소리'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민중가수 메르체데스 소사(Mercedes Sosa)는 우렁차지만 저음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을 깨우는 듯한 노래로 인종과 민족을 떠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나라에선 영화 '정사'의 사운드트랙에 그녀의 노래가 삽입되면서 그저 무드있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미국의 포크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적 운동에 나서며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양심적이고 용감한 가수로 유명하다.

 

메르체데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의 San Miguel de Tucuman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많은 가수들이 그렇듯이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아마추어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중심으로 이른바 'Nueva Cancion Movement'라는 당대 현실의 순수한 표현을 지향하는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이 운동의 창시자인 시인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즈(Armando Tejada Gomez)와

가수였던 남편 마누엘 오스카 마투스(Manuel Oscar Matus)의 도움으로 데뷔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 역시 각종 정치적 운동에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를 부르며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 남미의 불안한 정국은 그녀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70년대로 넘어오면서 'Nueva Cancion 운동'은 칠레의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에 의해

철저히 탄압을 받게 되었고 소사의 음악활동 역시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군사 정부의 감시를 받아오던 중에 1975년 공연 도중 청중들과 함께 체포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침내 1979년 그녀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3년간의 정치적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공백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82년 다시 복귀하여 성공적으로 공연을 가졌고

이후 지속적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순회공연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2000년 처음 신설된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 Best Folk Album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35년 동안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포크가수로의 외길을 지켜온 그녀는 이 시대 최고의 포크가수로 손꼽힌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그녀의 인생 역정은 사랑과 기쁨, 희망과 평화를 갈구하는 그녀의 노랫말에

 그대로 녹아들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며 감동을 주고 있다.(조안 바에즈와 듀엣으로 부르는 'Gracias A La Vida'는 정말 감동적이다).

 

이 노래는 독재군사정치가 물러나고 수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해방을 축하하는 그의 공연에 부른 노래이다.

 

그는 독재자들을 욕하지도 않았고 혁명을 주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감사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축하했고 해방이후 이노래의 영향으로

아르헨티나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