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언어의 횡포 ‘색깔론’

설경. 2008. 7. 30. 11:57
내일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일이다. 교육감 자리가 정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지만 선거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사회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고, 교육이 가치 분배의 중요한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감 선거는 애초부터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할 수는 있다. 문제는 겉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교묘하게 정치적 선동과 수사로 특정 후보를 편들거나 폄하하는 것이다. 특히 유력 언론의 색깔 씌우기는 우려스러울 뿐만 아니라, 거의 언제나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해왔다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보수 언론이 주경복 후보가 3년 전 "6·25는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하고 일부 사설에서는 그런 인물의 정체성과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대놓고 매도하고 있다. 통일전쟁 논란은 북한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을 김일성에 의한 통일전쟁이라고 본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학술적 이론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김일성이 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해 6·25와 같은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을까. 그는 미국이 한반도를 떠나자 소련의 지원을 믿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감행했다. 공산주의 적화통일을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북한의 무력 남침이 정당화되지 않으며 동족상잔의 비극과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개념이 6·25의 남침전쟁이라는 성격,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성격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에 '동무'라는 말이 있다.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이나 잡지 이름을 통해서 접하는 말이지만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왜. 북한에서 체제와 관련해서 긴요하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동지 또는 공산당원을 의미하는 'comrade'를 공산주의자들이 동무로 번역해 쓰면서, 순 우리말이면서도 언젠가부터 이 말을 쓰는 일이 힘들게 되었다. 영어 'people'의 번역어인 인민이라는 말도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말이다. 링컨이 말했다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말의 의미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로 번역할 때 온전하게 전해지지만 그렇게 번역해서 쓸 수가 없었다. 왜. 이것 역시 북한이 선점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말을 하면 곧바로 사상과 정체성을 의심받게 되는 현실을 접할 때면 반사적으로 '동무, 인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직도 우리는 언어 통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래도 희망 섞인 구석이 보이기도 한다. 한때 '좌익'이니 '친북'이니 하는 말은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사망시키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지금은 조금만 진보적인 말만 해도 보수 쪽에서 이 말을 갖다 붙인다. 그러다보니 좌익이니 친북이니 하는 말에 힘이 빠졌다. 20년 전만 해도 좌익 딱지가 붙으면 불온한 사람으로 단죄됐지만 지금은 그저 보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된다. 색깔론의 약발이 사그라든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조금 세련된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가 정체성 담론이 그 하나다. 이것은 좌익과 친북이라는 딱지보다 더 모호한 개념이다. 빨갱이 담론의 새로운 버전이 통일전쟁 담론이다. 이런 개념과 담론의 특징은 합리적인 논의와 논쟁을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담론이 의도하는 바의 함정에 빠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공론의 장에서 그에 대한 논쟁은 회피되고 주장만 난무한다. 과거 '좌익용공'이라는 딱지가 명부(冥府)에 끌려가는 증표로 사용되었다면 지금 그 역할은 국가 정체성과 통일전쟁 담론이 대신하고 있다.

어설픈 언어적 작난(作亂)과 상징조작, 그리고 부화뇌동의 결과는 참담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국처럼 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보도·연예·교육·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眞理部)의 건물에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이 내걸려 있다. 우아하게. 우리 마음에 이런 모순 논리가 힘을 발휘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1 "6·25는 통일전쟁" 주장을 비판적으로 논의해보라.
2 사회적으로 언어가 어떻게 사유를 지배하는가를 논의해보라.
3 소위 '색깔론'을 비판적으로 논의해보라.
<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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