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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8대 국회 뒤늦은 출범 환영하지만

설경. 2008. 8. 20. 20:07



[한겨레] 사설


여야가 마침내 18대 국회 원구성에 합의했다. 여야는 그동안 최대 쟁점이던 가축법 개정안 협상을 어제 마무리짓고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임기가 시작된 지 82일 만이다. 늦게나마 여야가 함께 국회를 출범시킨 것은 다행이다.

국민의 최대 관심사였던 가축법 개정안은 광우병 발생 때 긴급 수입중단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수입 재개 때도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등 일부 진전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미친다. 촛불 정국에서 드러났듯 다수 국민의 요구는 미국과 재협상을 해서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내장 등 위험물질의 수입을 금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야 합의에서는 미국과의 기존 합의는 개정되는 법에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미국과의 기존 협상을 수용했다. 통상 마찰을 피하려고 하는 정부 여당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기대 못미치는 가축법 개정


‘앞으로 일본과 대만의 대미 쇠고기 협상 내용에 따라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도록 한다’는 합의는 그나마 국민의 뜻을 반영하려고 애쓴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런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해 자칫 빈말에 그칠 우려도 있다. 국민에게 더 실망을 주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들의 협상 결과에 따라 정부는 반드시 재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가축법 개정안 논란과 별도로 이번 원구성 협상에서 드러난 가장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의 국회 무시와 거대 여당의 독주였다. 청와대는 특위에서의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으며, 한승수 국무총리는 쇠고기특위 출석을 여러 차례 거부했다. 어제도 ‘광우병 국가의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경우에는 국회의 심의를 받는다’는 가축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의 합의 사항을 정부가 수용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한때 협상이 깨질 뻔했다. 여야 합의가 나온 뒤에야 청와대 등 정부가 끼어들어 내용을 파기하려는 것은 일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국회를 경시하는 오만한 태도다. 한나라당도 집권 여당으로서 성숙한 정치력을 보이기보다는 법안 자동상정제 추진 등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민주당 역시 지도력 부족에다 대책 없는 강경 투쟁론에만 끌려다님으로써 정치 부재에 한몫을 했다. 원내대표 사이의 정치적 합의가 당내 반발로 무산되는가 하면, 대여 투쟁도 전략이나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여론을 따라가는 식이었다.

국정 운영의 세 축인 여야와 청와대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여야 대치와 정국 경색은 불 보듯 뻔하다. 주요 법안 등을 놓고 번번이 마찰음을 낼 것이다. 서로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고 정해진 규칙은 준수하는 정치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러자면 주도권을 쥔 정부·여당부터 앞장서야 하며, 야당도 집권 경험을 살려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선 밀렸던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부터 서둘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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