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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지만 과학영재학교 합격했어요

설경. 2008. 9. 4. 05:58

(부산=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은 적은 없고 학교수업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최고 득점자나 학력경시대회 최우수상 수상자들이 빼놓지 않는 대사다. 그러나 이말을 그대로 믿는 순진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얼마나 될까.

서울 강남의 학원들은 자녀 교육의 첫째 조건으로 서슴없이 부모의 경제력을 꼽는다. 갈수록 교육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오늘날 돈 없는 집 아이가 탁월한 학업성적을 올리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됐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한국과학영재학교 합격자 명단에 '작은 기적'이 들어 있었다. 월 84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11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부산 금곡중학교 2학년 백진언(14) 군이 2009학년도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에 합격한 것.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서울과학고와 함께 이공계를 지원하는 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졸업자는 면접 전형만으로 KAIST에 진학할 수 있다. 또 서울과학고와는 달리 영재성만 입증되면 학년에 상관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서울 강남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이들 학원의 수업료는 적게는 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른다.

3일 부산 북구 금곡동의 집에서 만난 백 군과 백 군의 어머니 백정애(41.여) 씨는 "학원수업료는 그야말로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고 말했다.

"진언이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살림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도 몸이 불편해 취업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정부 보조금이 생활비의 전부에요. 한 달에 수백만원이나 하는 학원에 보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백 군의 학업성적은 월등했다. 특히 수학에서 영재성이 돋보였다. 지난해 부산시교육청이 주최한 수학경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같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전과목 만점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학교성적도 뛰어나지만 백 군은 "수학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다른 과목은 '벼락치기'를 하는 게 문제"라고 털어놨다.

백 군의 담임인 이영두(32.여) 선생님 역시 "진언이는 다른 과목도 잘하지만 수학에는 천재"라며 "성품도 정말 착해서 선생님들끼리 모여 진언이를 도와줄 방법을 의논하곤 했다"고 말했다.

백 군의 영재성이 드러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수학문제가 정말 재미있다고 하기에 어머니 백정애 씨가 3학년 문제집을 사줬더니 3일 만에 모두 풀어버렸다고. 4학년 문제집은 일주일 만에 모두 풀어냈다.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때문에 백 군은 한 때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학교 수업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백 군을 병원에 데리고 갔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증세가 있다'며 자폐진단을 받기도 했다.

자폐증상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백 군은 좋아하는 수학을 공부할 때면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한다. 백 군의 장래희망은 당연히 수학자다.

어미니 백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렵다보니 '수학해서 돈 벌 길은 학원 강사밖에 없을 텐데…'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의대를 갔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군은 "돈 때문에 의대에 가고 싶지는 않다"며 "일단은 수학과 교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 교수가 못 된다고 해도 수학만 계속할 수 있으면 학원 선생님이 돼도 좋다"고 말했다.

백 군은 "앞으로 수학 공부를 더 해 역사적인 수학의 난제들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언젠가는 세계 수학계의 최대 난제라는 리만 가설(1859년 리만이 발표한 소수에 관한 논문. 1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있다)에 도전할 겁니다. 100년 넘게 풀리지 않은 문제인데 꼭 제 손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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