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사설] 9월 위기설부터 말끔히 해소해야

설경. 2008. 9. 4. 06:19

'9월 위기설'이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주가는 투매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어제 코스피지수 1,400선이 장중 한때 무너졌다. 원ㆍ달러 환율은 폭등세를 이어가고, 국고채 금리 등 각종 금리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주가 환율 금리 등 금융시장 전반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들고 있다.

금융시장의 혼란은 9월 위기설 괴담(怪談)이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과 시중은행이 해외에서 빌린 외화자금의 만기가 이 달에 집중된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들의 자금악화설도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금융시장의 혼란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경제기초 체력)의 문제점이라기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 동반침체, 고유가, 8월 무역수지 적자 확대 및 외국인 자본이탈로 어려움을 맞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로 대형 악재가 갑자기 터진 것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도한 불안감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어제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한국에 제2의 외환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은행과 기업의 재무상태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굳건해졌다는 것이다. 무디스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당시와는 엄청나게 달라진 데다, 경상수지 적자규모도 감내할 만하다. 위기가 재발할 위험성은 낮다.

외환위기의 개연성이 없는데도 경제주체들이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따져보고,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시 시장불안을 잠재우는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지난 주말 미국 주가가 폭락하고, 주초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는데도 어제야 대책회의를 열어 9월 위기는 없다고 해명했다. 뒷북대응으로 실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 불안감을 덜어주고, 선제적 위기관리로 9월 위기설을 한갓 기우(杞憂)로 만들어야 한다.

외국투자자 일시에 이탈 가능성 적어… 당국 진화불구 환율 급등등시장 불안
쏠림현상이 문제… "정부가 신뢰 줘야"한껏 부풀려진 ‘9월 위기설의 유령’이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실체도 근거도 없다”고 일축했고 경제 전문가들도 “과장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패닉(공황상태)에 빠진 시장은 귀를 닫아 버렸다.

‘위기’ 아닌 ‘위기설(說)’이 쏠림 현상을 확대 재생산시키며, 시장을 진짜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11년전 환란 때처럼 해외 금융기관과 언론들이 한국의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2일 당국자들이 총동원돼 하루 종일 확산되는 위기설 진화에 나섰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 경제정책포럼에서 “공교롭게도 국채 만기가 똑 같은 날짜에 몰려있어서 그렇지 9월이라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환란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단언했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도 긴급 금융상황점검회의를 통해 “정부는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대란설’은 과장된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고, 신제윤 차관보국제업무관리관 역시 브리핑을 통해 “9월 만기 도래하는 외국인 채권이 채권시장이나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당국의 강도높은 부인에도 불구, 시장은 이틀째 패닉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환율은 당국의 구두개입에도 불구, 18원이나 급등하며 1,130원선(종가 1,134원)까지 무너뜨렸다. 이틀간 상승폭이 무려 45원에 달한다. 주식시장에서도 투매심리가 이어지며 장중 한때 코스피지수 1,400선이 붕괴(종가 1,407.14)되기도 했다. 금리도 급등,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6%대에 진입하는 등 금융시장은 주가ㆍ원화ㆍ채권가격이 모두 추락(트리플 약세)하는 총체적 불안양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위기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보유한 채권이 대부분 국채로 국가부도상황이 아닌 한 일시에 회수할 이유가 없고, 회수한다 해도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설사 일시에 자금 회수에 나서더라도 이미 스와프(달러 교환) 계약을 맺어서 만기에 달러를 새로 사들일 필요가 없는 만큼 외환시장을 자극할 요인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결국 남는 것은 금융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극단적 위기는 아니더라도, 시장의 과도한 일방적 기대심리가 지속될 경우 정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해외언론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위기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시장불안과 쏠림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대공황도 루머로 시작됐다”면서 부풀려진 위기설과 이로 인한 시장의 맹목적 기대심리에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만들어진 위기설이 저절로 진화될 수는 없다. 결국은 정부가 시장에 믿음을 주는 것이 관건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금 위기설의 본질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시장 쏠림현상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위기요인이 갈수록 번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9월 위기설이란?
외국인들은 현재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약 67억달러의 채권을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고 모두 처분해 떠나가면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고 나라전체가 환란때처럼 외환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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