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원,국제중

[급변하는 교육현장] <1> 국제중에 목매는 학부모와 아이들

설경. 2008. 9. 16. 16:26


"외고 가려면 국제중이 직코스" 초6부터 고3같은 생활

경시대회·영재교육원 등 경력쌓기 경쟁

'반장 한학기 제한' 학부모들 감투 싸움

"내신위주 전형? 1,2년내 끝날 것" 코웃음

서울 M초등학교 6학년 변은영(가명ㆍ12ㆍ여)양의 하루는 고되다. 변양은 학교에서 귀가하는 시간인 오후 3시가 되면 학원으로 직행한다. 오후 8시까지 월ㆍ수ㆍ금은 영어 토론(Debating), 화ㆍ목ㆍ토는 수학 심화 수업을 듣는다.

단순한 선행학습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변양은 중학교 2학년 과정인 '수학 8-가' 과목을 중학생 언니ㆍ오빠들과 함께 공부한다. 영어는 독도ㆍ광우병 논란, 고유가 문제와 같은 최신 시사 내용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두시간여 동안 CNN 뉴스를 청취하고 청소년용 영자신문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학원 숙제와 영어 일기 작성까지 끝마쳐야 자정 무렵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다. 6월 말 1년짜리 캐나다 영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대입 수험생을 방불케 하는 강행군은 모두 코 앞으로 다가온 청심 국제중 입시 탓이었다. 하지만 변양의 어머니 김모(41)씨는 최근 딸의 입시전략을 수정했다. 서울에도 국제중 두 곳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은 전형요강이 청심 국제중만큼 까다롭지 않다"며 "기왕이면 통학도 가능하고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지역의 국제중을 타깃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도입 계획이 발표된 지 한 달. "국제중 설립으로 인한 사교육 과열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시교육청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일선 교육 현장은 사실상 '초등학교 입시 부활'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 초등학교 선거까지 과열

초등학교 선거의 이상 열기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서울 도곡동에 사는 주부 박모(43)씨 아들(11)의 학교가 그렇다. 박씨는 지난 달 열린 학부모 모임을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안건으로 나온 2학기 학급 반장 선거에 대해 학부모들이 "1학기에 학급 임원을 한 학생이 선거에 입후보 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

박씨는 "회의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임원 경력이 국제중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서로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인지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지역교육청이나 대학 부설로 만들어진 영재교육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모(45)씨는 최근 학교에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영재교육원 입학에 관한 문의를 했다가 면박만 당했다.

아이가 8살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온 터라 학교장 추천을 받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 최씨는 "특목고와 국제중을 염두에 둔 지원자가 줄을 서 학급별로 인원을 할당했다고 들었다"며 "1차 전형일 뿐인데도 영재교육과 별로 상관없는 서류를 요구하고 다른 학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문을 열 국제중학교인 대원중과 영훈중은 영어인증시험 등 영어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점수위주의 지필고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올림피아드, 영재교육원 등을 부지런히 수소문하고 다닌다.

김은실하이멘토연구소 김은실 소장은 "국제중의 전형 특성상 다재다능한 학생들의 합격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학생부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지원자에게 없는 특별한 장점을 갖추고 있어야 가산점을 받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유명학원 입학이 더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 조모(11)군은 요즘 일주일에 3번씩 40만원짜리 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2주 뒤에 있을 H학원 영재반 레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조군의 어머니 권모(45)씨는 "학원의 도움 없이는 영재교육원이나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쌓기가 절대 불가능하다"며 "어찌보면 지금은 타고난 영재가 영재교육을 못 받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사교육이 사교육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형 유학 학원으로 유명한 강남의 G학원은 미국, 캐나다 등 유학반 수강생을 모집하면서 아예 국제중 대비용 유학반을 따로 모아서 운영하기도 한다.

학원은 평가가 세분화돼 있어 실력 측정이 정확하고, 약한 부분을 보충하게끔 다양한 틈새 특강을 마련해 학부모들을 유혹한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이모(41ㆍ여)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지역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WㆍS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전입이 비일비재했지만 지금은 학교 수준보다 좋은 학원의 문을 뚫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수학은 H학원, 영어는 J어학원 등 이른바 '물 좋은' 지역 명문학원의 수업을 들으려면 길게는 3개월을 기다려야 레벨 테스트라도 겨우 치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학원의 정보만이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는다. 학부모들은 영어평가를 안하겠다는 교육 당국의 발표에 코웃음을 친다. 엄모(47)씨는 "대원중이 국제중으로 전환되면 대원외고에 지원할 때 분명 유리할텐데 평범한 아이들을 뽑겠느냐. 학원에서도 내신 위주의 전형은 1,2년 내로 끝날 것이라고 귀띔한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국제중 논란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제중 설립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국제중을 목표로 하는 학생ㆍ학부모의 눈높이가 외국어고, 명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제중 신드롬' 학원들이 부채질


외고 내신비율 높아 진학때 불이익 가능성 불구 호들갑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 속도를 따지자면 서울 강남 학원가는 단연 1순위에 꼽힐 만하다. 교육 당국이 아무리 새로운 교육 정책을 만들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대비책을 알려주겠다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입시설명회 일정을 알리는 전단지가 학원가에 나돈다.

국제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19일 국제중 도입 계획이 공개되자마자, 사교육 기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잇따라 설명회를 열며 학부모들을 끌어 모았다.

사교육 시장에서 국제중의 파급력은 얼마나 될까? 대원ㆍ영훈 국제중의 모집정원은 320명이다. 지난해 청심 국제중에 지원한 서울 출신 1,600여명이 모두 서울 지역 국제중에 도전한다고 가정하고, 국제중 신드롬에 편승한 수요를 최대한 감안해도 3,000명은 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중을 목표로 하는 학부모들은 대개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목고 입학 가능성을 놓고 지원 여부를 저울질한다.

하지만 서울 지역 외고들은 내신 실질반영 비율을 최대 50%까지 높인 2009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내놓았다. 국제중이 외고 진학에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얘기다.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국제중은 외고 진학 시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경제적 논리로 따져도 기껏 몇 천명 정도의 신규 시장을 '블루 오션'으로 삼기에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일부 학원들의 공세적 마케팅은 '국제중 가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최근 1년간 대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며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린 몇몇 사교육 업체들이 돌파구로 국제중을 점찍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도끼눈 현상'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주식 상장 등 조건부 투자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짝 호재라도 있으면 과도하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사교육 시장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 '급변하는 교육현장' 관련기사 ◀◀◀

▶ 무한경쟁으로만 치닫는 교육

▶ <1> 국제중에 목매는 학부모와 아이들

▶ 새정부 교육정책 무엇이 달라졌나

김이삭기자 hiro@hk.co.kr강희경기자 kbstar@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