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류근철 대한민국 1호 한의학(漢醫學) 박사 '카이스트에 578억' 아낌없이

설경. 2008. 10. 1. 21:34

[머니투데이 김경환기자][[당당한 부자 2008]'어머니의 사랑'만 가슴 속에...류근철 박사]

"부모님께서는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의 진원지인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부상을 당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붙잡혀 고문을 당하셨지요. 그 때 어머니께서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지셔서 정신 분열 증세까지 겪으셨어요."

전재산인 578억원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쾌척하면서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 기록을 경신한 류근철 박사(82)는 기부를 실천하게 된 삶을 살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후 일본 경찰을 피해 도망치듯 이사를 다니며 집안 형편이 급속히 기울었고 결국 등록금 60전을 제때 내지 못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머니께서는 거지들이 밥을 달라고 하시면 자신의 끼니를 대신 내어 주실 정도로 심성이 고왔던 분이셨지요."

◇ '어머님의 사랑' 기부에 눈 뜬 계기

류 박사는 어머님의 사랑을 늘 마음 한 켠에 지니고 되새기며 살았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어렵게 사는 이웃을 위해 희생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류 박사는 나중에 돈을 벌면 꼭 올바른 곳에 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한때 어린나이에 일본으로 가 근로자 생활을 하며 지금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생을 몸소 체험했다. 나중에 늦은 나이에 대학(동양의학대학 한의학과, 현 경희대학교 한의예과)에 다닐 때에도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만을 먹으며 공부에만 매달렸다.

류 박사는 배고픔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의사가 될 몸인데 돈이 없어 굶는 사람, 소화기가 아파 굶는 사람의 고통을 미리 체험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회고했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던 4일 아침 서울 광화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류 박사는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기자 일행을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았다. 얼굴은 팔순의 나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생활속의 기부를 실천하고 항상 웃으며 바쁘게 사는 것이 젊음의 비결인 듯 했다.

류 박사의 연구실 겸 서재로 이용되는 아파트에는 고서, 불상, 저울, 벼루 등 골동품들로 발디딜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류 박사는 특히 그중 거실 한 켠에 놓여있는 저울(천평)을 가리키며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갖다 놓은 것"이라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과 양심의 기울어짐 없이 반듯하게 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전재산 578억원 잠시 보관한 돈에 불과

류 박사가 KAIST에 기부한 재산은 서울 서대문 지하철역 인근 빌딩(시가 약 500억 원)과 경북 영양군의 임야 10만975평(약 40억 원), 서울 광화문의 주상복합아파트(61평형·약 14억 원), 골동품 100여 점 (약 24억 원) 등 총 578억 원에 달한다. 아내 명의로 돼 있는 서울 송파구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하면 전 재산을 기부한 셈이다.

연구실로 쓰고 있던 광화문의 주상복합아파트 마저 KAIST의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내놓았다.

류 박사는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데 가족들의 반대가 없었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밝혔다.

"교직(고려대학교 간호대학 교수)에 있었던 아내가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줘서 많은 힘이 됐습니다. 아내의 내조가 없이는 기부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류 박사는 "우리나라는 기부자가 1년 안에 죽어 가족이 소송을 하면 50%는 되찾을 수 있는 유류법(遺留法)이란 규정이 있습니다. 1년 안에 죽지는 않겠지만 기부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는 진단소견을 첨부해 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할 계획 입니다"고 그 만큼 자신의 기부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어떻게 500억이 넘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됐는지 재테크 비법이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고생해서인지 저축 정신이 강했어요. 한번 돈이 들어오면 함부로 쓰지 않고 곧바로 은행에 저축했어요. 저축한 돈은 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았지요. 그리고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지 운영하던 한의원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좋은 결과로 나타났어요. 그러다 한의원 운영과 '전자침술기' 등 특허를 낸 제품을 수출하면서 번 돈을 모아 서대문 쪽의 건물을 하나 샀는데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자산 가치가 크게 올랐지요. 그때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곳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 "돈은 불행의 원천, 올바른 곳에 사용돼야"

류 박사의 돈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도 독특했다. "원래 돈이란 것에는 귀신이 붙어있어 노여움을 잘 타 개인이 갖고 있으면 반드시 불행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좋은 목적에 써야 합니다."

그는 주식 투자는 한번 해봤는데 손해를 보고 다시는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채권투자는 조금씩 했다고 밝혔다.

류 박사는 KAIST를 기부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고 미래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책임질 곳이 KAIST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나라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도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부 문화의 체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부를 할 당시의 기분뿐만 아니라 기부를 하고 나서도 섭섭하지 않아야 하지요. 기부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같이 끈끈한 유대를 지속해 보람 있는 일이 계속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부할 당시에만 감사장을 받고 끝내서는 기부 문화가 발전할 수 없어요."

이어 "선진국처럼 맘 놓고 즐겁게 기부할 수 있도록 세제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가가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에 좀 더 신경 써야 기부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박사는 기부금이 보람 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조건부로 기부키로 했다. 기부금은 우선 충남 연기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땅을 사서 KAIST 세종캠퍼스를 짓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경북 영양군에 기증한 10만975평의 땅에는 과학 기술인을 위한 휴양지와 연구시설, 과학유공자 묘역을 조성키로 합의했다.

그는 이번 기부를 계기로 KAIST 특훈 교수로 있으면서 한방을 활용해 우주비행사들의 신경질환 치료 연구 등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리고 세계 속의 KAIST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 운동도 적극 진행할 예정이다.

류 박사는 이를 위해 KAIST 발전재단 명예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KAIST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앞으로 1000억 원의 기부금을 모금에 도전한다.

류 박사는 지난 7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등기서류 전달식을 갖고 모든 기부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류 박사의 기부를 바탕으로 KAIST를 세계적인 이공계 명문 대학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류 박사의 기부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미 모교인 천안 천동 초등학교에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실내 체육관과 게이트볼장, 골프연습장, 시계탑 등을 세웠다. 또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 선생의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무료 의료 봉사 활동을 벌이는 등 생활속의 기부를 실천해왔다.

◇ 류근철 박사는?

1926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류 박사는 대한민국 1호 한의학(漢醫學) 박사로 현재 모스크바 국립공대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1956년부터 개업의로 진료를 시작한 류박사는 1972년 세계 최초로 침술로 제왕절개수술 마취에 성공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73년에는 경희대 한방의료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서의학중풍센터' 설립을 주도, 처음으로 양방과 한방 협진을 시도했다.

류 박사는 1976년 경희대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한의사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후 미국·유럽·러시아 등과 교류를 하면서 한의학의 우수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데 힘썼다. 특히 한의학의 과학화와 체계화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한의학에 공학을 접목한 '전자침술기', '추간판 및 관절 교정용 운동 기구'를 개발해 국내와 미국·일본·캐나다에 7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한의학과 공학을 연결하는 연구를 계속해 한의학자로는 처음으로 1996년 모스크바 국립공대에서 의공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스크바 국립공대 종신교수직에 임명됐다.

류 박사는 러시아아카데미 의공학회 정회원이자 사단법인 원자력응용의학진흥협회 명예회장직도 맡고 있다.

모바일로 보는 머니투데이 "5200 누르고 NATE/magicⓝ/ez-i"
김경환기자 kennyb@
<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