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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폼 나는 직업만 가지려 해서?

설경. 2008. 10. 17. 14:06

어제 보내드린 경제레터 ‘고용쇼크.....이태백의 절규’를 보고 한 중소기업인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최근들어 모든 언론이 실업대란을 들먹거리지만 중소기업에는 딴세상 얘기라는 것입니다.

그는 대기업의 채용축소, 고용쇼크를 말하기 전에 중소기업 현장의 아우성도 좀 들어달라는 말을 합니다. 청년실업자가 100만명을 넘는다고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입니다.

그의 편지내용을 읽어 봤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로서는 “웬 청년실업?” “일자리는 많은데 청년들의 눈이 높아서?” “폼 나는 직업만 가지려 해서?” “그래서 실업대란?” 이렇게 빈정거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편지내용은 이렇습니다.

<구직난이 심각합니다. 저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할 사람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바로 중소기업 현장은 인력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기 맘에 딱 맞는 직장만 고르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좀 지난 얘기입니다만 한 기관이 내놓은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전체 취업자의 85%가 직장을 선택할 때 기피하는 직종이 있다는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10명 중 8~9명이 취업을 꺼리는 직종이 있고 이 때문에 선뜻 원서를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나이가 적을수록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피하는 직종이 있다는 응답이 20대 88%, 30대 90%인데 비해 40대 이상은 60%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영업직이나 생산직, 단순노무직, 건설현장직, 판매직에 필요한 인력은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중소기업에 비전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업무가 과중해서, 보수가 적어서, 주변의 인식이 나빠서 등의 이유를 대며 적지 않은 취업 대기생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심어주는 글도 부탁드립니다. 중소기업에서도 열심히 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세요.>

그저께 인크루트가 구직자 4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체 응답자의 85.9%는 취업원서를 낼 때 기피하는 직종이 있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연령이 낮은 구직자일수록 상대적으로 특정직종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이 이렇듯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중소기업 못해먹겠다”는 말을 합니다. 쓸 만한 인재를 찾기 어렵고 설령 찾는다 해도 바로 떠나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직원에 대해 가르치고 키우기가 오히려 두렵다는 말까지 합니다.

이태백도 모자라 30대 태반이 백수라는 삼태백이 유행할 정도로 구직난을 호소하는 시대이지만 중소기업에겐 딴 세상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이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때 우리는 무조건 수입만 보장되면 그저 열심히 일했습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리지 않고 노동으로 허기에 찬 배를 채웠습니다. 그랬기에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오늘의 경제규모를 일구는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고학력 졸업자가 늘어나면서 노동에도 질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일당은 적지만 그다지 구속을 받지 않는 직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개인과 일터의 비전을 먼저 고려하게 됐습니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자유와 함께 정신적 자유도 증대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보니 궂은 일은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태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 못사는 나라에서 건너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때문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직장 선택에 있어서도 도심에서 떨어진 곳은 도외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월 100만원 주는 대기업과 150만원 주는 중소기업 중 어느 곳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하면 대기업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많게 된 것입니다.

월급뿐 아니라 복지수준이 중요하고 개인적인 비전과 회사에 대한 비전, 그리고 자기 계발의 기회가 중요하지만 중소기업들이 그것을 중족시켜주지 못하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난달 불완전 취업자가 280만명으로 통계작성 이후 가장 많다고 합니다. 2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사상 최저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에게는 이같은 현상이 배부른 통계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마땅한 일자리, 맘에 드는 일자리에만 연연하기 보다는 ‘인간은 일을 할 때 물질적인 풍요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되새겨보는 아침입니다.

베스트 셀러로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파울루 코엘류처럼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 인생은 죽음과 항상 같이 하는 리스크 게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권대우 회장 president@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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