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쌀 직불금제와 시장원리

설경. 2008. 11. 3. 17:42

얼마 전 ‘호모 오일리쿠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석유 생산량이 현격하게 줄어들 2018년 대한민국의 생활상을 가상적으로 보여준 대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호모 오일리쿠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석유 인간’ 혹은 ‘석유 의존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석유가 현대인의 생활에 기여한 바는 참으로 대단하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우리를 호모 오일리쿠스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그런데 만약 그 석유가 고갈되거나 그 양이 급격히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 비관론자들은 에너지를 둘러싼 대재앙(전쟁이나 대량의 죽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때도 시장주의적 질서가 제대로 기능할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점은 모두 알 것이다.

최근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가 불거지자 일각에서는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임차인 즉 소작인이 직불금을 받아가든, 혹은 땅주인이 그것을 받아가든 시장원리상 별반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한다. 소작인이 직불금을 받을 경우 땅주인은 그에 비례해서 소작료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히려 땅주인이 직불금을 받아갈 경우 소작료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직불금을 직접 경작자에게만 지급하는 것의 의미는 반감된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적절히 반응하기 때문이란다. 내친김에 소작을 치는 땅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장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부재지주나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으냐 하는 논리다. 농지 임대차도 ‘상업적 거래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한다.

농지의 최소 40% 이상이 소작지라는 현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은 명목에 불과할 정도로 이미 심각하게 균열되어왔다. 우리 헌법이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한 까닭은 일제 치하에서 지주에 의한 소작농 수탈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사람은 천하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경사회의 전통도 그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오랫동안 소작제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 사회가 공업국가로 변모하면서 사실상 소작제가 허용되기 시작했고, 농지는 개발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에 의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해갔다. 직불금 제도도 이런 현실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육체의 노고를 들여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소득의 일부를 보전해주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목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농지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실질적인 경작자에게 손실을 보상해주는 것이 직불제의 본질이다.

따라서 농사짓지 않는 땅주인이 직불금에 손을 대는 것은 애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것은 경자유전의 원칙과도 상관없다. 시장의 원리 밖에서, 아니 그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직불금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불금도 결국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임차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직접 경작자에게만 직불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제도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보면 호모 오일리쿠스는 사라질 수도 있고, 오일(석유) 없이도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식량(쌀)이 없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상찬해 마지않는 선진국에도 농업 직불금제도가 엄연한 것은 식량 즉 농업의 문제를 시장기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쌀 직불금 제도의 목적이 일차적으로 농가의 소득보전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농업의 보전과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이 만능인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1 호모 오일리쿠스의 종말 이후의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라.

2 쌀 직불금 제도의 취지와 의의를 논의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비판해보라.

3 농지에도 시장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평가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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