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논술카페]허수아비는 새를 쫓지 않는다

설경. 2008. 11. 10. 14:16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중)

꽃피는 사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어트의 `잔인한 사월’에 동의할 수 없다. 차갑게 얼어붙은 대지에서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계절에 그 무슨 잔인함이란 말인가? 봄은 우리에게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와 더불어 진달래 꽃전을 지지고, 머리감던 아낙네들이 나비점을 치던 반가운 철이다. 우리에게 봄은 새풀 옷을 입으시고 하얀 구름 너울 쓴, 진주 이슬 신으시고 꽃다발 가슴에 안은 봄처녀가 오시는 가슴 설레는 계절이다. 나무에 물이 흐르고 오곡백과를 윤택하게 적실 봄비가 내려 풍년을 기원하는 농가의 소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청명한 계절이 우리의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그래서 반갑고 기쁜 계절일 뿐 잔인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월이 잔인한 것은 엘리어트의 사사로운 역설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잔인한 피의 축제였다.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신도들은 들판에서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사냥한 짐승의 생살을 찢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었다. 신화 속에서 여신도들은 디오니소스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찢어죽이기도 했다. 디오니소스는 농사의 신이요 풍요의 신이다. 農神은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에서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신이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 카니발은 인간을 위한 축제다. 인간을 위한 축제를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풍요를 원치 않는 반인간적 행위이기에 처단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대지를 기름지게 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일종의 풍요제였다.

풍요를 기원하는 인간의 풍습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신화 삼황오제의 삼황 중 하나인 신농씨는 인간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신이다. 조선시대의 선농제는 신농씨와 후직씨를 섬기며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였다. 소아시아 지역의 아르테미스는 그 모습이 그리스와 사뭇 다르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신이었던 아르테미스는 가슴에 젖이 가득 달린 여신으로 등장한다. 젊은 처녀들은 축제 기간 아르테미스처럼 분장하고 여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렀다. 수십 개의 젖은 풍요를 염원하는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이자 해모수의 부인인 유화도 풍년제의 主神이었다. 농사와 관련이 깊은 유화 부인은 그래서 달을 상징하며 가이아이자 데메테르인 것이다.

제의는 신을 향한 비원이기에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만 한다. 인간에게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또 있을까? 고대 인간의 무리에서는 흉년이 들면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죽여 제단에 올렸다. 인간의 죄악으로 빚어진 흉년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두머리의 목숨을 바쳐 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것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권력이 막강해진 우두머리는 자기를 대신할 자들을 골랐다. 제단에 바쳐질 희생은 자신의 아들이기도 했고 정적이기도 했다. 신화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제물은 인간에서 동물로 바뀌어갔다. 인신공희(human sacrifice)는 사라졌지만 정성스레 씨앗을 뿌리고 부지런히 김을 맨 들판을 바라보며 제 땅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소망은 변하지 않았기에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빼닮은 나무 인형을 만들어 신에게 바쳤다. 곡식이 영글어가는 가을을 지나 들녘에 오래도록 홀로 선 허수아비는 인간을 대신해 바쳐진 제물이다.

허수아비는 제물로 바쳐졌건만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 빤히 쳐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볍씨를 쪼는 참새마저도 사랑한다. 참새떼가 오는 것은 풍년의 결과임을 알기에, 사랑하는 모두를 배불리 먹일 수 있기에 한량없이 기뻐한다. 가을을 끝낸 빈 들판에 외로움으로 남은 허수아비는 사람이 그립고 참새가 그립다.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헤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 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이정하의 `허수아비’)


김용균 <지혜의 숲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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