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영화와 논술] 美 대선 유세 유쾌하게 풍자 '왝 더 독(Wag The Dog)'

설경. 2008. 11. 6. 15:26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의 한 장면.

정 많은 오바마는 만들어진 이미지?

미국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두 후보 간의 경쟁이 뜨겁다. 연륜을 내세우는 공화당 맥케인 후보와 젊은 패기를 내세우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 그들은 미국 각지를 돌며 유세 행진을 벌이고 수많은 광고를 쏟아낸다. 언론이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포착해 지구촌 곳곳에 타전하기 때문에 미국인은 물론 바다 건너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어느새 미국대선 후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미대선의 유세 과정을 유쾌하게 풍자하는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배리 래빈슨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해 '부정형'으로 답한다. '왝 더 독'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선 후보에 관한 모든 진실이 갇혀버린다. 오바마는 과연 외할머니를 끔찍이 아끼는 따뜻한 남자일까? 매케인은 진정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련한 보수 정치의 달인일까? '왝 더 독'의 대답은 단호하다. 이것은 모두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왝 더 독'에서 경합을 벌이는 인물은 현직 대통령과 그를 제치고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려는 닐 후보. 영화는 현직 대통령의 이미지 광고로 문을 연다. 현직 대통령 홍보팀은 말 조련사를 내세워 '중간에 뛰는 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정책 운영에 큰 해가 되는지를 세뇌시킨다. 반면 상대 후보 닐은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 의혹을 건드린다. 현직 대통령은 선거일을 12일 앞두고, 백악관을 찾은 걸스카우트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백악관 참모들이 선거 직전 불어 닥친 위기를 타계하는 방법은 놀랍다. 대통령의 지목을 받고 달려온 정치해결사 브린(로버트 드 니로)은 성공한 할리우드 제작자 모스(더스틴 호프먼)를 찾아간다. '선거 시나리오'를 새로 짜기 위해서다. 브린은 선거의 승패가 후보의 브랜드 이미지에서 비롯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광고와 뉴스만 적절히 활용하면 여론의 추이를 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다.

모스는 브린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것은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한 제작자는 있지도 않은 전쟁을 만들어내자고 말한다. 전쟁처럼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국민들은 보수화되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성추문 의혹쯤은 쉽게 잊어버릴 거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미국은 미지의 적국 알바니아를 상대로 위험한 미디어(?) 전쟁을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제작자는 스튜디오에 배우와 CG 팀을 불러들여 전쟁으로 고통 받는 알바니아 소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반전을 외치는 노래를 만들어낸다.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유권자가 늘어간다.

시나리오를 새로 짠 제작자는 내친김에 평생의 역작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미디어 광고는 처음 위기 탈출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지만, 이제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의 욕망이 더해지면서 점점 위대한 사기극으로 치달아간다.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전쟁은 잊어도, 한 장의 감동적인 사진은 잊지 않는다"고 말하는 제작자는 전쟁 중 알바니아에 억류됐던 가상의 군인 슈만(우디 해럴슨)을 내세워 위대한 전쟁영웅을 만들기로 한다. 제작자의 시나리오에 의해 전쟁영웅으로 탈바꿈한 인물은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해온 정신이상자. '헌 신발'로 유명해진 슈만은 이제 미국인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모든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89%까지 치솟는다.

영화 마지막, 현직 대통령의 승리 요인에 관한 분석 토론회가 벌어진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현직 대통령의 광고가 대중에게 먹혔던 이유는 두려움을 자극했기 때문이에요. 결국 대통령도 상품인 거죠." "그래요. 대통령도 광고를 해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

'왝 더 독'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정보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를 묻는 대신, 이런 질문 자체가 얼마나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인지를 냉소적으로 웅변한다. 현란한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광고는 속성상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정치 광고는 더더욱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비루한 뒷모습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

①현대의 선거를 가리켜 흔히 미디어 선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디어 선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디어 선거의 정의와 장단점을 '왝 더 독'의 내용을 참고로 정리해보자.

②대통령 선거에서 광고는 꼭 필요한 것일까? 또 이들이 만들어낸 광고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정치광고의 필요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해보자.

③영화 속에서 슈만은 실제 전쟁 영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 의해 미국인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상시하는 현대의 영웅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영웅은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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