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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특집]美최고 학생 12인에 뽑힌 이형진군

설경. 2008. 11. 11. 12:13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다르듯 공부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와 엄마의 호흡이다. 성적표조차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로 독립적이었던 이형진군을 위해 어머니 배선례씨는 '티 나지 않는' 공부 분위기 조성으로 아들을 배려했다.

미국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SAT)과 대학입학시험(ACT)에서 만점 획득, 미국 최고의 고교생들이 겨루는 '웬디스 고교 하이즈먼상 2006' 최종 후보 12명에 진출, 작년 USA 투데이가 선정한 '올해의 고교생 20인'에 선정. 올해 예일대 입학. 재미교포 이형진군(19)의 이력이다. 이력만 보고 뱅뱅 도는 안경을 쓴 공부 벌레를 상상했다면 오산. 직접 만난 이형진군은 해리포터를 닮은 풋풋한 미소로 먼저 악수를 건네는 멋진 청년이었다.

"한국엔 이번이 네 번째예요. 올 때마다 한국어가 늘어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탓에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한인 교회에서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틈틈이 한국말을 배웠다. 지금은 75%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안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모습이다.

형진군은 이번에 건국 60주년 기념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선정, 국회의장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동안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스타 트리뷴지에서 인턴십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한국행을 망설이기도 했다.

"갑자기 엄마에게 연락을 받고 어리둥절했어요. 인턴은 10주 과정인데 중간에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거절했죠."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왜 그런 상을 받는지 몰랐다고 한다. 형진군에게 공부는 특별한 대가나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형진군의 한국행을 설득한 건 엄마 배선례씨(55)였다.

"형진이는 항상 '내가 할 일을 했는데 뭐가 대단하냐' 그렇게 생각해요.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한데 제가 설득했죠. 한국의 정치와 문화를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형진이가 승락했죠."

그렇게 해서 찾은 한국은 형진군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주었다. 건국 60주년 기념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던 형진군은 그렇게 많은 남녀노소가 다 같이 모여 있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며 당시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잘 웃고 쾌활한, 또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형진군의 공부 비결은 뭘까?

공부법●1보여주기 위한 공부는 NO!


형진군은 이제까지 한 번도 부모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부모님들이 공부에 대한 압박을 너무 많이 주세요. 학원도 서너 군데 가야 하고. 그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대학교에 가서 더 많은 걸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면 지치잖아요. 옆에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공부가 아니에요."

앳된 얼굴에서 제법 따끔한 평가가 튀어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최대한 독립적으로 공부하되 모르는 건 바로바로 선생님과 친구들한테 물어봤어요. 호기심이 생기는 대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더라구요."

형진군의 부모는 아이가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형진군의 학습 과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했는지 못했는지 검사하고 평가하는 순간 그 공부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한 공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돼버리는 것이다.

형진군의 아버지 이규은씨(59)는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는 아들이 공부를 못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시험도 끝나고 성적표가 나올 때가 됐는데 안 가져오더라구요. 1년 내내 성적표 한번 볼 수가 없어서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크리스마스 때 카드에 끼워 편지와 함께 보여주더라구요. 그때 아이 성적을 처음 알았어요."

'부모님께 성적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배우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형진군은 거듭 강조한다.

스스로 하는 공부의 원동력은 바로 동기부여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비결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형진군은 동기부여를 꼽는다.

"주변에서 제가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하는지 많이 물어봐요.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는 거예요. 제가 특별히 뛰어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다른 친구들과 달랐던 것 아닐까요. 공부가 즐겁다 보니 하기 싫고 피곤하다는 핑계가 저에겐 안 통했던 것 같아요."

형진군에게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고생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피곤하지 않듯 잠을 못 자도 에너지가 생긴다.

"방에 있는 시계를 다 없애버렸어요. 잠잘 생각을 하면 공부가 안 되더라구요. 재미있는 걸 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잖아요. 좋아하는 걸 하면 세 시간만 자도 힘이 생겨요. 내가 지금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생각하고 그 안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찾으면 그다음부터는 억지로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즐기면서 하는 거죠."

공부법●2집 안 곳곳에 책과 신문 펼쳐놓으세요


중학교 때부터 상위권을 유지해온 형진군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배링턴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예일과 스탠퍼드, 프린스턴, MIT를 비롯한 9개 명문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는 어머니가 잡아주었다.

"두 살 반 때부터 동네 도서관의 '어린이 동화 프로그램'인 스토리 타임에 데려갔어요. 1980년대에 미국에 온 저와 남편은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책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쳐야겠다 싶었죠. 전문 스토리텔러 선생님에게 동화 구연을 들으며 함께 뒹굴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냈어요. 책을 읽는 게 즐거운 놀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아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준 뒤 형진군이 좀 더 큰 뒤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한 보따리씩 빌려 집 안 곳곳에 놓아두었다. 아이가 언제든지 펼쳐 볼 수 있도록 아이 손이 닿는 장난감 상자 근처, 부엌, 방에도 늘 한 바구니씩 담아놓았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아이스크림을 주거나 과자를 만들어줬어요. 손등에 칭찬의 표시로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구요. 그랬더니 스무 권을 넘게 빌려다 놔도 금방 다 읽더라구요."

형진군은 중학교에 들어가며 어드벤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더니 혼자 도서관에 가 가방 2, 3개를 책으로 가득 채워왔다. 그렇게 빌려온 50여 권의 책에서 한 달 동안 거의 한시도 손을 떼지 않았다. 심지어 목욕하는 동안에도 책을 읽다 책을 욕조에 빠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문 읽기도 형진군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여기에도 어머니 배선례씨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이에게 신문을 보게 하려고 기사 하나를 골라 잘 모르는 척하며 물어봤어요. '형진아, 엄마가 이 단어를 잘 모르겠네. 무슨 뜻이야?' 이렇게 묻는 식이었죠. 맨 처음에는 '엄마가 사전 찾아봐' 하던 아이가 계속해서 물어보니 그다음부터는 가르쳐주더라구요. 자기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찾아보고 하면서 서서히 신문에 흥미를 가졌죠."

매일 아침식사 전에 쉬 읽을 수 있도록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데일리 헤럴드」 등 5, 6개 신문과 뉴스위크 등의 잡지를 집 안 곳곳에 펼쳐두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신문을 접하며 형진군은 그 안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게 되었다. 읽는 재미는 쓰는 능력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교내 신문과 지역 신문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저널리스트로의 꿈을 키우게 됐고 현재 미니애폴리스의 「스타 트리뷴」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 신입생에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다.

공부법●3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 메모하는 습관으로

메모는 형진군의 오랜 습관이다. 그래서 포스트 잇 때문에 두꺼워진 형진 군의 책은 어디에 둬도 티가 난다.

"얼마 전에 책장 정리를 했는데 책이며 교과서며 한 벽면에 가득 찼더라구요. 책이랑 노트마다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길래 형진이 책인 줄 알았죠. 고물 박물관이 따로 없어요."

배선례씨는 형진군의 SAT(미국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만점의 비결이 "메모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형진이가 중학교 가서 읽은 책에는 제가 모르는 단어들이 꽤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형진아 이건 무슨 뜻이니?'라고 메모지에 적어 그 페이지에 붙여놓았어요. 그러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보고 사전을 찾아 저에게 단어 설명을 해주는 거죠. 그때 형진이가 메모와 친해진 것 같아요."

형진군은 그렇게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며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순간순간 생각이 떠오를 때 항상 놓치지 않고 메모로 정리해뒀다. 집 안 곳곳 가득한 메모에는 형진군의 생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을 이용해 호기심을 자극한 배선례씨의 교육법은 아이가 어느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방면으로 다양한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유난히 아이에게 집착하는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배선례씨는 "아이에게 시키지 말고 함께하라"고 조언한다.

"한국에 있는 아이들은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죠. 아이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엄마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면 잘 들어주고, 운동을 하고 싶어 하면 함께해주고요. '너, 나가서 줄넘기 100번 하고 와' 하고 시키는 것보다 엄마가 같이 나가서 함께 운동하세요. 저는 비가 오는 날에는 차고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운동을 했어요. 아이가 요리를 하고 싶어 하면 예쁜 그릇을 다 꺼내놨구요. 엄마가 애들 눈높이에 맞춰야 해요. 열 살짜리 아이가 뭘 하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그 결과를 알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지 말고 그냥 하도록 두세요. 실패하고 느끼게끔. 저는 그렇게 키웠어요."

■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