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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올림피아드 6관왕' 주인공 만나보니…

설경. 2008. 11. 20. 16:38

서울과고 합격 김정한군… 못말리는 독학고집 불구 줄곧 전교1등

8세때 첫 IT자격증 딴 후 경시대회 끝없는 수상…드럼연주 취미 여유도

과학고 준비의 최대 디딤돌인 올림피아드에서 무려 6개 분야의 금상을 수상한 김정한(15) 학생.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경시 초등부 금상,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수학올림피아드(이하 KMO) 2차 중등부 금상, 중학교 3학년 때 KMO 2차 고등부 금상과 물리, 화학, 천문 올림피아드 각 금상을 수상했다. 수학,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 정보올림피아드 총 7개 분야 중 하나라도 수상경력이 있으면 과학고는 물론 민사고 등 자사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

KMO 2차와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상 이상을 수상하면 과학고 합격은 보장될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응시자가 많은 데다 시험이 어려워 수상이 쉽지 않다는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올림피아드 준비에 열을 올려도 장려상 하나 받기 어려운 올림피아드에서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일찌감치 서울과학고등학교 합격증을 받아놓은 김정한 학생을 만나 올림피아드 준비 노하우를 취재했다.

정한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올림피아드 실적을 쌓았다. 어머니 주선영(46) 씨 는 “ 책을 보고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어려서부터 자기주도학습에 익숙했지요. 책을 보다 모르거나 의문스러운 점이 있으면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궁금증을 풀어왔어요”라고 말했다. 믿기지 않을 지 몰라도 정한이의 화려한 수상실적은 오롯이 정한이의 몫이라는 얘기다.

정한이가 처음 자격증을 딴 건 8살 때였다. 주씨가 워드 1급 자격 취득을 위해 사둔 교재는 7살짜리 정한이가 더 열심히 봤다. “소파에 던져둔 교재를 혼자 보고 있길래 ‘뭐 보면 아나’ 식으로 넘겼었어요. 얼마 후 ‘아 이거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저한테 ‘엄마, 이런 거잖아’ 식으로 설명해주는 게 아니겠어요? 결국 두 달 후 엄마와 아들이 함께 필기시험원서를 넣었는데, 전 떨어지고 정한이만 합격했어요.”

주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크게 웃었다. 정한이는 실기를 준비할 땐 그 다음 자격증의 필기를 공부하는 식으로 워드프로세서 1, 2, 3급과 정보처리기능사, 정보처리기기운용기능사, 인터넷검색사 1, 2급 등 당시 나이로 딸 수 있는 IT자격증 11개를 6개월 만에 모두 따냈다.

만 8살의 정한이는 ‘최연소 IT관련 자격증 최다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정한이는 ‘백수’였잖아요. 학원도 안 다니니까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 공부할 시간이 많았지요”라는 주씨의 설명이다. 초등학생 정한이의 아이큐는 162. 영재다. 아무리 영재라지만 어린 나이에 책을 읽으며 혼자 공부해 취득하기엔 만만치 않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정한이는 특히 수학 분야에 두각을 보였다. 초등 3학년 때 담임교사의 성균관대학교 주최 전국영어경시대회 출전 권유에 응시원서를 쓰다 알게 된 전국수학경시대회에도 원서를 넣었다. 수학은 대상을, 영어는 은상을 수상했다. 주씨는 “수학공부를 따로 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큰 상을 받길래 수학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대회 수상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전국 전국수학경시대회 대상, 왕수학 전국수학경시대회(중앙일보, 에듀왕) 금상에 이어 5학년 땐 과학기술부 주최 한국 과학영재올림피아드 금상을 수상했다.

수학뿐 아니라 영어, 과학, 컴퓨터, 글짓기, 미술대회 등에서의 수상실적이 중학교 3학년인 현재 떠오르는 것만 A4용지로 3장이나 되지만, 실제 수상실적의 1/7에 불과하다고 한다.

주씨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대회를 준비한 노하우에 대해 “대회 정보를 알게 된 후엔 일단 접수 후 대회 주최 출판사의 경시대회 문제집 중 가장 어려운 걸 골라 풀었어요. 문제를 다 풀기 전까지는 절대 답지를 보지 않았지요. 답답한 마음에 제가 보여주면 정한이는 울어버렸어요. 혼자 풀 수 있는 걸 왜 방해하느냐는 거죠. 문제집의 문제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풀이방법도 있을 수 있고요. 정한이는 자기생각을 따로 메모해뒀다가 저자와 직접 통화해 궁금증을 풀었어요. 저자들은 전화상이지만 자상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줬다고 해요. 오류를 시인하기도 하고요. 어떤 분은 기억해뒀다가 새 책이 나오면 보내주시기도 했어요”라고 귀띔했다.

올림피아드 등 경시대회 준비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으론 학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주씨를 아무리 다그쳐도 ‘죽어도 혼자 공부했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학원 도움을 아주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올림피아드 준비를 위해 다닌 건 아니에요. 학원 정규 수업을 들을 수도 없는 수준이었고요. 문제는 풀이과정 중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답변해주실 선생님을 찾는 거였어요.” 정한이가 다녔다고 할 수 있는 학원은 방이역에 위치한 ‘청산영재센터’였다. “청산학원에서 개최한 수학경시대회 대상 수상이 계기가 됐어요. 학원에선 장학혜택으로 학원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게 해줬죠. 정한이가 별로 안 가고 싶어해서 처음엔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학원에서 수학뿐 아니라 영어와 논술 과정도 마련했으니 언제든지 와서 들으라고 하더군요. 당시 논술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라 논술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학원은 과학이나 수학이 아닌 논술로 시작했지만, 정한이는 논술보단 수학과 과학과목에 흥미가 있었다. 문제는 학원에서 수강할 수 있는 반이 없었다는 것. 중1 때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3 수업에서도 시험 보면 1등 할 정도였다. 학원은 수강하는 대신 집에서 혼자 문제 풀다가 ‘막히는 부분을 물어보러 다녔을’ 뿐이다. “학원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어요. 정한이가 언제라도 전화하면 흔쾌히 학원에 오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문제도 함께 고민해 풀어주고, 당장 풀 수 없는 문제들은 고민하신 후 다시 불러 말씀해주시기도 했어요. 정한이의 경시대회 정보도 많이 알려주셨죠. 대회 정보는 물론 기출문제도 모아주셨어요. 정한이는 사실 학원에 ‘놀러 가는’ 수준이에요. 아예 ‘학원에서 놀다 올게요’라며 집을 나서지요”라는 주씨의 설명이다.

정한이는 지난 9월부터 과고 합격생들이 모인 반에서 과학고 선행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본격적으로 학원에 다니고 있다. 서울과학고에서 깊이 있게 학습하는 일반물리와 일반화학을 공부한다. 학원 정규수강은 이제 고작 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정한이는 내신 0.212%다. 중학교 1학년부터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저 혼자 공부할 내용을 선택하고, 공부계획을 짜고, 공부를 다 한 후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라며 학습동기를 설명했다. “특별한 학습법 같은 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수업시간에 집중하라는 등의 일반적으로 보편화한 학습법 정도라고 할 수 있어요. 대신 모르는 게 있으면 즉각 물어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을 때까지 집요한 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한이는 “수업시간 내용은 다 내 것으로 만든다”는 자세로 임한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졸아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하나 꿀 수 있지만, 그 시간에 공부하면 꿈을 하나 이루게 된다”는 초등 은사의 말씀도 곁들였다. 자습할 때도 ‘교재 한 권 다 보겠다’는 식으로 한번 잡으면 놓질 않는다.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은 5시간 정도다. 천문올림피아드를 준비할 땐 보통 2~3달 공부해야 하는 <지구과학Ⅱ>를 일주일 만에 독파할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다.

공부만 할 것 같은 정한이는 낙천적이고 꽤 유머러스하다. 중2 때부터 드럼연주에도 심취해 있어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4시간씩 드럼연습을 한다. 친구들과 ‘빅밴드’를 결성해 합주도 한다. 지난 11월엔 세종대학교 축제에서 공연도 했다. 정한이는 “올림피아드 준비할 땐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지만, 일주일 12시간 드럼연주는 저한텐 스트레스 해소 출구에요. 대신 시간을 정해 정확히 지키죠. 드럼을 연주할 땐 질리도록 하는 게 원칙이에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연주한 후엔 공부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정한이는 별명이 ‘스캐너’일 정도로 암기력도 대단하다. ‘조신(조합의 신)’이라고도 불린다. 수학에서 정수, 기하, 함수는 선행으로도 풀 수 있지만, 조합은 선행으론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정한이는 그만큼 수학적 역량을 타고 났다는 얘기다. 현재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를 준비하고 있는 정한이는 아직 뚜렷한 장래희망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단은 포괄적으로 이과 쪽으로 공부하고 싶은데, 과학고 들어가서 더욱 심층적으로 공부한 뒤 신중하게 결정할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과학고 조기졸업 후 서울대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영재교육을 받을 당시 인상 깊었던 아이비리그의 스탠포드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역할모델은 벤처기업인 ‘안철수’를 꼽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과를 일군 분이에요. 의사라는 탄탄대로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죠. 개발한 백신을 우리나라의 정보과학 발전을 위해 200억의 매매제의도 거절했다는 얘기도 존경스러워요”라고 말하는 정한에게서 우리나라 이공계 미래를 이끌 희망이 비춰졌다.

■ 서울과학고등학교

서울과학고등학교는 외고까지 포함한 특목고판에서 절대 강자로 통한다. 2007년 국제올림피아드에선 국내 수상자 28명 중 15명을 배출했다. 지난 20년 간 국제올림피아드 고등부 전체 수상자 363명 중 가장 많은 157명(43.2%)의 수상자를 내며 위상을 입증해왔다. 2007학년 서울대 합격자 72명을 낸 실적은 서울예고를 제외하고는 전국 1위다. 카이스트 51명, 연세대 22명, 성균관대 12명, 포스텍 3명 등 대부분 이공계 명문대에 합격했다. 전교생 2/3가 조기 졸업하는 서울과학고는 엘리트집단 1번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과학영재고로의 전환이 유력한 과학고로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고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입시 수준과 경쟁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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