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자사고

'외고 0.1%' 공부여왕 비결 알아보니…

설경. 2009. 1. 15. 00:00

대원외고 임정윤양 "노트 하나면 내신 OK!"

초등 1년 미국생활 뒤 꾸준히 영어 환경 유지

꾸준한 독서의 힘… 토플 만점 · 영어논술 대상

천재는 악필? 단언컨대 이 말은 수많은 악필들의 어설픈 변명이다. 논술 등의 지필시험이 존재하는 한,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는 엄연한 학습 경쟁력의 한 요소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채점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내용이라도 깔끔한 글씨에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원외고 0.1% 임정윤(17) 양 역시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사례다. 노트 필기 실력도 가히 수준급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하는 모든 내용은 모조리 기록하겠다는 일념 하에 필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내신 전략을 짜고 있다. 덕분에 시험공부를 할 때도 그저 깔끔하게 정리한 노트와 교과서만 반복해서 공부할 뿐, 절대 참고서나 문제집을 푸는 경우가 없다.

이렇게만 해도 정윤이의 학교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그 학습법에 신뢰가 생긴다. 여기에 토플만점, 영어논술시험 대상 등 입이 딱 벌어지는 만만찮은 수상 실적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0.1%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팔방미인 정윤이의 학습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를 위해 정윤이의 방에 들어갔더니 동그랗고 투명한 상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패의 타이틀은 ‘지인용상’.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원외고의 전통 있고 공신력 있는 상이다. “공부 잘했다고 받은 상은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서 받은 거예요”라며 정윤 양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 상은 한마디로 대원외고가 보장하는 ‘모범생 인증 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상이다.

학교 성적은 기본이고 학교생활,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한 팔방미인 4명(국내반 3명, 국제반 1명)을 매년 선정해서 수여하는 상으로, 두둑한 장학금이 함께 지급되어서 전교생이 탐을 내는 최고의 상이라고 한다. 엄마 백진희(42)씨는 이 상 때문에 지인들에게 한턱 쏘는 게 더 힘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딸을 바라보는 대견한 눈빛과 표정은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영어논술시험 대상 수상이 계기가 되어 약속된 인터뷰였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니 흥미로움이 더해졌다.

학교 공부는 오직 교과서로만, 노트 필기에 주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서 내신 점수 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실수로 한 문제만 틀려도 전교 등수가 몇 십 등이 내려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우리 학교에선 점수를 잘 얻는 것은 가능하지만 석차까지 챙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학교 성적을 묻는 질문에 정윤이가 이런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해 달리고 있는 정윤이. 사춘기 소녀인지라 외모에 대한 끝없는 관심으로 거울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직 졸음 쫓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서 고뇌할 때도 있지만, 확실한 공부 방법을 하나 쥐고 있으니 바로 노트 필기다. 정윤이는 수업시간 선생님이 말하는 내용을 단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는 ‘필기의 여왕’.

곱고 단정하게 생긴 외모만큼 글씨체 또한 깔끔하게 정돈되어 한 눈에 봐도 내용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글씨를 또박또박 적다 보면 한 눈에 쏙 들어오니 기분도 좋고 이해도 잘 돼요. 머릿속으로 내용 정리도 잘 되고요. 필기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집중을 하게 되니까 수업 시간에 조는 일도 거의 없어요.”

정윤이의 기본 철칙은 ‘선생님의 말씀은 모조리 받아서 적는 것’이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정리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들은 내용을 흘리는 법이 없다. 자연히 선생님의 말씀을 대부분 기억하게 되고, 특히 선생님이 강조했던 중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색깔 별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를 해서 기억하기도 쉽다. 다른 건 몰라도 내신을 대비하는 데 이보다 좋은 공부법은 없다는 것이 정윤이의 지론이다.

“전 가늘고 깔끔하게 써지는 펜이 좋아요. 볼펜이 끊어지거나 너무 두꺼우면 신경이 쓰여서 필기를 하기 싫어져요. 어쩐지 손목이 아프기도 하고요. 색깔도 다양한 것이 좋아요. 검정색이나 빨간색은 지루해서 싫어요.” 필기의 여왕답게 필기구를 고르는 안목도 까다로운 편이다. 글씨가 잘 써지는 펜을 정해두고 색깔 별로 가지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기에게 잘 맞는 펜을 발견했다고 한다.

영어책으로 어휘력 쑥쑥, 꾸준함의 힘

“제가 뭐든지 좀 늦은 편이에요. 대원외고 준비도 남들보다 한참 늦은 중3 여름방학부터 시작했죠. 영어경시대회도 친구들은 보통 1학년 때 도전을 하거든요. 근데 전 올해 봤어요. 전 별다른 필요성을 못 느꼈었는데, 2학년이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도 해야 하고요.”

스스로 ‘느린 아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정윤 瑛?이번 경시대회 역시 거의 마감일이 되어서야 접수를 해서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저 평소에 탄탄하게 쌓아둔 내공이 도움이 된 것이라고. 정윤 양은 제 6회 코리아타임스 영어대회 논술부문 대상을 받았다. 올해 2월에 치른 토플 시험에서는 만점의 기염을 토했고, 텝스 역시 만점에 육박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한마디로 영어는 꽉 잡고 있는 것이다.

“영어 공부는 꾸준히 해온 덕분에 시험을 따로 준비하는 노력은 안 해도 좋은 성적을 얻었던 것 같아요. 4개의 주제 중 하나를 고른 다음 논지를 펼쳐가는 형식이었는데, 전 친구들이 잘 선택하지 않은 분야를 선택해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윤이는 논술 시험을 볼 때는 글을 전개하는 기술이나 어휘력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주제 선정이라고 강조했다. 질문의 난이도는 어려운 것도 있고 보통인 것도 있는데, 힘들더라도 이왕이면 다른 학생들이 많이 고르지 않는 주제로 쓰는 게 경쟁력이 있어서 점수를 얻기에도 유리하다고. 글을 쓸 때는 큰 개요를 짜서 글의 큰 틀을 짠 다음 사이사이에 내용을 덧붙여 하나의 논지를 완성하는 방법을 고수했다.

정윤 양은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글 쓰는 데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다고 한다. “평소에 엄마께서 책을 많이 사주시는 편이에요. 전 서점에 갈 시간도 없는데다 인터넷도 거의 안 하는 편이거든요. 엄마가 보시고 괜찮아 보이는 책을 골라주시는데, 대부분 베스트셀러나 재밌는 것들이에요. 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해리포터 시리즈이지만요.”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읽는 편이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해리포터 시리즈는 수백 번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다소 과장되었을 엄마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오십 페이지 셋째 줄’이 무어냐고 물으면 내용을 꼬집을 정도란다. 독실한 크리스천이 매일 성경을 읽듯 해리포터를 읽고 또 읽는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끼고 살았다는 해리포터 책을 보니,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앞날개와 뒷날개가 찢어져 있고, 본문 역시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원서가 비싸서 이태원 중고 책방을 주로 이용을 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요. ‘1+1 행사’를 하는 책도 많고요.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해서 어떤 책을 사줘도 재밌게 읽으니까 기분이 좋죠.”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빠듯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책은 주로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고, 일 년에 20권 정도의 원서를 읽는다고 엄마 백씨는 말했다.

미국생활은 영어공부의 힘

정윤이는 초등학교 시절 1년 정도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공무원인 아빠를 따라서 온 가족이 나섰던 것인데, 이 시간은 정윤이의 영어 실력을 늘리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고 한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제 딴에는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일단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이라는 새로운 곳이 너무 신기했을 테고요. 집밖으로 나가면 모든 사람이 영어를 쓰니까 영어실력도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미국 생활의 신선함은 자연히 영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영어를 접하면서 감각을 이어갔다. 영어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물론 학원에도 꾸준히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딱 한번 방학 때 잠깐 미국으로 캠프를 다녀온 것을 빼면 해외에 나간 경험도 그게 전부다. 오직 영어에 대한 관심만으로 영어 실력을 유지해왔다.

“일단 어휘나 기초만 잘 닦아두면 영어 실력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학교 수업만 충실하게 들어도 영어 실력 쌓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외고의 경우 영어 수업 시수가 많아서 별도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충분하거든요.”

일주일에 영어 수업만 8시간인데, 그 중 3시간은 회화 수업이라고 한다. 정윤이도 중학교 때까지는 어휘 중심으로 기본을 닦는 데 주력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에 대한 관심과 동기부여다.

베리타스 알파=임언영 기자 www.veritas-a.com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