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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무한경쟁> ② 공급과잉 우려

설경. 2010. 2. 17. 09:02
 

압구정동 성형외과 골목
수많은 성형외과 병원들이 몰려있는 압구정동 성형외과 골목(자료사진)

변호사 내후년 2천명 신규 공급..로스쿨 대란
의사 매년 5천여명 진입..시장은 이미 포화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임수정 기자 = 한의사 송모(44)씨는 2000년대 초반 지방의 대도시 아파트 단지에 한의원을 차렸다.

   처음에는 영업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주위에 한의원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지금은 인근에 한의원이 12개나 된다. 설상가상으로 손님은 줄어들고 있다.

   "인구 1만 명 당 한의원 1개를 적정 수준으로 봅니다. 지금 제가 있는 아파트 단지의 거주 인구가 3만 명 정도니까 한의원이 12개면 적정 한의원 수를 훨씬 넘어선 거죠. 도저히 수지가 안 맞더라고요"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자 개원을 위해 빌린 은행 대출의 원리금이 점점 불어만 갔다. 빚이 6억 원을 넘어서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2008년에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요즘 한의사들 고생 많이 합니다. 한의원 생기는 거랑 통닭집 생기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그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죠"
김씨가 겪은 문제는 우리나라의 의사, 변호사, 한의사, 변리사 등 전문직이 겪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바로 전문직의 공급과잉 문제다.

  
◇ "내후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1985년 사법연수원 수료생이 300명을 넘어선 이래 1998년까지 수료생 수는 300명 안팎이었다. 이때가 대한민국 변호사의 전성시대였다. 월급쟁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소득이 가능했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 법조인 수를 크게 늘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매년 100여 명씩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린 끝에 2004년부터는 매년 1천 명 가까운 인력이 쏟아져 나왔다.

   신규 인력의 급증은 변호사 수입의 급감으로 이어졌다.

   2000년 41건이던 서울지역 변호사의 1인당 평균 수임건수는 2005년 34건으로 줄어들더니 지난해는 21건으로 급감했다. 2000년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2000년 3천 명이 못 되던 서울 변호사 수가 지난해 6천 명을 넘어선 것과 정확히 반비례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악몽'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후년이면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2천 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같은 해 사법연수원에서도 1천 명 가까운 인력이 나온다.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만 되어도 2천 명의 신규 인력이 법률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로스쿨 대란'이라고 불릴 만하다.

   변호사 이모(38)씨는 "지금도 상당수 변호사가 빚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후년 2천 명의 인력이 쏟아져 나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내후년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장진영 대변인은 "로스쿨의 취지는 좋지만, 배출 인력을 어떻게 소화할지는 아직 대안이 없는 것 같다. 법무 담당 공무원이나 기업의 준법감시인으로 변호사를 채용하고 경험 많은 변호사의 판사 임용을 확대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리사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6년 이전에는 한해 배출되는 변리사 수가 30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급격히 늘어 2001년부터는 매년 200명 이상을 뽑고 있다. 반면 특허 출원은 크게 늘지 않고 있으며 2008년에는 전년보다 오히려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리사는 "워낙 수가 많고 장사가 안 되는 곳이 많아 가격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변리사업계는 신규 고객을 창출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많이 망한다"고 말했다.

  
◇ "개원의 더는 자리가 없다"
전국의 개인병원 수는 매년 늘어 2004년 2만 6천524곳에 달했다. 하지만, 증가세는 거기서 멈췄다. 2008년 2만 6천861곳으로 4년 새 고작 1.2% 늘었다. 4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왜일까. 더는 개인병원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부유층이 많이 거주해 의사들이 개업 지역으로 선호하는 서울 강남구의 사례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매년 200곳이 넘는 개인병원이 강남구에 새로 들어선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새로운 추세가 생겼다. 바로 폐업하는 개인병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구에서 폐업한 개인병원은 2005년 128곳에서 2006년 147곳, 2007년 164곳으로 늘어 2008년에는 178곳에 달했다. 한의원은 아예 개업보다 폐업하는 곳이 더 많은 실정이다.

   강남만의 사정이 아니다. 지하철 역세권이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10여 개의 개인병원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다.

   반면 신규 진입자는 넘쳐난다.

   매년 전국의 의대에서 3천 명 가량의 졸업생들이 의사 자격증을 딴다. 치의대 졸업생과 한의대 졸업생도 각각 800여 명에 달한다. 매년 5천 명에 육박하는 신규 인력이 의료시장에 들어오는 셈이다.

   의사 회생 전문 사이트 `닥터회생'의 정강현 전문위원은 "출산율의 저하와 경기침체로 의료 수요는 늘지 않지만 공급자만 자꾸 증가하고 있다. 최근 개인병원 경영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빅5'로 대표되는 대형병원으로만 몰리는 것도 개인병원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빅5'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약사 이문재(39) 씨는 "요즘에는 감기, 몸살 등 가벼운 증상이 있는 사람도 종합병원 가정의학과 등으로 몰린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임금자 연구위원은 "경영난을 겪는 개인병원이 크게 늘었다. 이들은 적자를 면하려고 과잉진료 등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의대 졸업생의 수를 줄이고 종합병원의 지나친 환자 유인을 제한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2/17 08: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