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차 주부 전모씨(28·여)는 '서우맘'으로 통한다. 전씨의 일상은 8개월된 아들 서우에 철저히 맞춰져있다. 전씨는 SNS를 애용한다. 육아카페 '맘스홀릭'은 오랜 친구. 조리원부터 태교여행, 성장앨범, 유모차 선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를 이곳에서 얻었다. 요즘은 지역 육아카페에서 만난 엄마들과 '뱀띠아가모임'을 결성, 소모임을 갖고 있다. 백화점 '문센(문화센터)'에서 '오감발달'과 '유리드믹스(음악)' 수업을 듣고 같은 반 엄마들과 갖는 티타임도 빼놓을 수 없다. 전씨는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엄마들과의 교류는 필수"라고 말했다.
신 모성, '맘'이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다. 이름은 있지만 스스로를 '맘'이라 일컫는 젊은 주부들은 SNS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며 철저히 자녀 육아와 교육에 맞춰진 공통의 '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안한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학력 주부들이 자녀 삶의 매니저로 새로운 '맘 정체성'을 적극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는 '맘'이다…와이프로거이거나, 매니저맘이거나 '맘'들은 우아하다. 아이에 '올인'하는 '매니저맘'이면서도 엄마로서 삶을 공개적으로 즐기고 가꾸는 '와이프로거(주부블로거)'다. '유빈맘' 최모씨(28·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매일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리다가 최근엔 블로그에 로그인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며 "딸이 잠들면 사진편집을 하며 일기를 쓰는 게 일상이 됐다. 100일간의 기록을 책으로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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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육아카페. 지역별로 세분화된 다양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 캡쳐 |
맘 정체성은 SNS가 주도했다. '맘'의 모태는 '육아카페'다. 2003년 네이버가 카페서비스를 시작한 직후 개설된 '맘스홀릭 베이비'는 '지후맘', '맘스카페' 등 수많은 유사 '맘 카페'를 양산하며 육아카페 열풍을 이끌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가 처음 사회집단으로 떠오른 것. 현재 네이버 '육아/여성' 카페는 2만6652개에 이른다.
주부들은 SNS에서 '00맘'이란 아이디로 활동하거나 '00맘 블로그'를 운영하며 공통의 '맘 문화'를 형성했다. '조리원', '태교여행', '성장앨범', '문센(문화센터)' 등은 '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맘'들은 추천되는 엄마로서의 일상, 라이프스타일을 서로 과시하면서 결속된 폐쇄적 집단을 만들기도 한다. '조리원', '문센' 모임은 '영어유치원', '사립초' 입성을 위한 토대가 된다.
◇고립되고, 불안해 '맘'이 된 엄마들 주체적으로 보이는 '맘'들. 하지만 내면엔 신자유주의 사회의 극심한 입시, 취업난 속에서 유아 때부터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경쟁과 불안감도 내재한다. '정보 공유'를 통해 불안감을 극복하려다 더욱 큰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현대 엄마들은 외롭고 고립돼 있다. 전국 엄마들의 경험이 집약된 육아카페나 블로그는 '초보맘'들이 집에서도 손쉽게 참고할 수 있는 육아교과서가 된다. 김모씨(29·여)는 "예전에는 엄마들이 동네에 모여 하루 종일 같이 놀다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다 각자 개인플레이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다. 카페에서 엄마들과 친해지면 만나서 정보를 나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감이 증폭될 위험도 많다. 육아카페에는 월령별 태교·육아법에 대한 정보와 상품이 망라돼 있다. 아이 목욕법, 놀이법, '키크는' 마사지에 이르기까지 '프로맘'들의 과학적 조언이 넘쳐난다. 이를 다 따라가지 못하는 '맘'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초기 모성수행기 여성들의 스마트폰 이용'의 저자 홍남희씨는 "맘 문화에서 '기준'이 된 것들을 소비할 수 있는지가 계층별로 갈리는데 그걸 못하면 엄마노릇을 못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의 삶 전반 기획하는 新 모성 전문가들은 현재 '맘'들은 전통적인 한국 어머니의 교육열과는 다른 신 모성이라고 진단했다.
황정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전의 전통적 교육열은 자녀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한정된 가족자원을 교육에 투자하는 물질적 뒷바라지였다면 요즘은 엄마가 주도해 아이가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도록 미리 인생플랜을 짜주는 진화·기획된 모성"이라며 "자녀세대의 사회진출이 날로 어려워짐에 따라 아이 삶 전반에 대한 훨씬 '긴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혜경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녀에 대한 헌신'이란 측면에서는 같지만, 여성의 교육·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런 자신을 '멋지고, 우아한 엄마', 좀 더 트렌디한 '맘'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조강지처', '슈퍼우먼'과는 또 다른 주부의 역량 과시 방식"이라고 말했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전엔 물밑에서 전화로, 담 넘어 나누던 주부들의 네트워크가 인터넷상에 가시화된 것"이라며 "육아든 뭐든 열심히 하려는 한국 여성들 특성이 드러나는데, 이 네트워크를 내 아이의 성공과 가족 이익을 위해서만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면 더 큰 고립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