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장부장의 운명

설경. 2013. 12. 16. 16:08

 

장부장의 운명

 

김정일 이후 북한정권 2인자이자 최고 실세였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전격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나흘 만에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즉각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김일성 대학 출신의 엘리트로서 김정일의 여동생인 백두혈통 김경희와 결혼한 장성택, 그는 왜 처형됐을까요.

집권 2년차를 맞은 김정은이 고모부를 사형시키면서 얻으려 한 것은 무엇일까요.

북한의 권력지도는 앞으로 어떻게 새로 그려질지 2580이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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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 쓰레기 장성택.."

◀SYN▶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INT▶ 리철호

"정말 갈기갈기 찢어서 역사의 오물장에 내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성택.

1946년 1월 22일 함경북도 청진 출생.

그 집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저 평범했습니다.

◀SYN▶ 탈북자

"장성우(장성택 형)가 늘 말하는 게 그것입니다. 난 농사꾼이라고.. 얼굴 생긴 것도, 얼굴 검은색이기 때문에 난 농사꾼과 다른바 없다."

그의 진짜 운명은 대학시절 시작됩니다.

1965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 수업이 한창인 강의실에서 한 여학생이 앞자리의 같은 과 동기 남학생의 얼굴을 풀잎으로 간질입니다.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SYN▶ 한옥정 탈북 가수

"북한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지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됐지만 여학생 집안에선 평범한 집안의 남자는 안 된다며 교제를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노발대발했습니다.

여학생의 이름은 경희.

북한 절대 권력자 김일성의 딸이자, 후계자 김정일의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장성택입니다.

김일성은 둘 사이를 떼놓기 위해 장성택을 평양에서 2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원산으로 강제 전학시켰지만, 경희는 김일성의 벤츠 승용차를 혼자 몰고 아버지 몰래 원산까지 달려갔습니다.

기숙사에서 빨래까지 해주며 최고 권력자의 딸은 사랑을 지켰습니다.

◀SYN▶ 강명도 교수

"자기 혼자 몰래 벤츠 몰고 타고 내려가니까.. '야 이거 사고나면 큰일나겠다 이러다가' 그래서 김일성이 '야.. 우리 경희 정말 대단하다'

결국 김일성도 두 손을 들었고, 만난 지 7년 만인 1972년 김경희와 장성택은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공주의 남편이자, 왕의 사위인 부마로 간택된 남자.

최고 권력자의 딸과 결혼하는 동시에 평범했던 장성택의 삶은 새롭게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40년간 그는 절대 권력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부하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그의 운명이었습니다.

2002년 10월 26일

인천공항에 북한 고려항공 비행기가 내렸습니다.

8박 9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북한 경제시찰단입니다.

북한 장관급 인사만 5명에 단장은 우리나라 경제부총리급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박남기.

◀SYN▶ 박남기

"차후에 돌아보면 많은 의견들이 나올 겁니다"

대규모, 고위급 시찰단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단장 뒤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장성택이었습니다.

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 불과했지만,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매제로 이미 남한에서도 유명 인사였습니다.

코엑스와 롯데월드, 삼성전자와 부산까지 전국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지만,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SYN▶

"가장 인상적인 게 있으시다면..."

"(웃음)"

◀SYN▶

"한말씀만 해주시고 가시죠.."

"......"

당시 장성택과 호텔 방에서 함께 술을 마셨던 박지원 의원은 장성택이 직급은 낮았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SYN▶ 박지원 의원

"아침에 박남기 단장이 기다리고 있는데 안 내려가더라고요. 술 마셨다는 핑계로 안 내려가고 있으니까 로비에서 기다리는.. 그런 것만 보더라도.."

환영 만찬을 주최했던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은 장성택을 사실상 단장으로 기억했습니다.

◀SYN▶ 정세현 장관

"만찬 끝나고 기념사진 찍는데 북한 관계자들이 장성택을 앞줄 맨 가운데 서라고 권했지만 장성택이 됐다면서 맨 뒷줄 끝으로 갔다.."

이후로도 장성택은 남북정상회담 조율과 경협 사업 등에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성택이 2인자로 설 수 있었던 건 김일성 일가의 복잡한 가족관계 때문입니다.

김일성의 첫 번째 부인이자 김정일-경희의 생모인 김정숙이 일찍 죽고, 김일성이 김성애와 재혼하면서 김정일-경희는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둘의 사이는 이 때문에 매우 돈독했습니다.

◀SYN▶ 강명도 교수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김정일이) 항상 이 말을 해왔거든요. 간부들 앞에서. 이거는 제가 그냥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책에 나오는 겁니다. 김정일을 우상화한 책에 나와요"

김일성 사후 권력을 둘러싼 투쟁에서 김정일에게 배다른 형제는 모두 적이었고, 믿을 사람은 유일한 동복 남매인 김경희뿐이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백두혈통의 가족이 된 장성택은 그렇게 권력 핵심부로 들어간 겁니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장성택에겐 여러 높은 직함이 있지만 북한에선 그를 부르는 별칭이 하나 있습니다.

그냥 '장 부장' '장 부장'입니다.

김일성-김정일의 권력 세습이 확정되고, 1980년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로 올라서면서 장성택도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1988년 청소년사업부 부장, 이듬해 3대혁명소조부 부장을 맡으며 굵직한 사업을 성사시켰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장성택은 '장 부장'으로 통하며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INT▶ 탈북자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줬습니다. 성격상 온화하고 자기가 일단 하겠다고 한 것은 책임져주고, 그래서 주민들 속에선 장부장 장부장 하면, 장성택이란 이름 안 불러도, 장부장이라고 하면 간부들과 주민들 속에 다 통합니다."

견제도 많이 받았습니다.

1978년 측근을 모아 연회를 벌이다 김정일의 노여움을 사 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쫓겨났다 돌아왔고, 2004년엔 권력 남용 혐의로 측근이 숙청되고, 자신도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마다 '장 부장'은 화려하게 부활해 더 높은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SYN▶ 후지모토 겐지/김정일 요리사

"절대적인 2인자는 장성택입니다. 김정일 장군의 다음이죠. 그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성택 씨가 부장에서 1부부장으로 강등됐을 때도, 최고 간부들조차도 '장 부장 동지'라는 호칭을 썼죠."

특히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장성택은 가장 가까이에서 김정일을 모시며 후계구도 확립까지 책임지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당 행정부장에 올라, 다시 한번 '장 부장'으로 권력 2인자임을 입증했습니다.

◀SYN▶ 남성욱 박사

"행정부는 당에서 권력기관을 다루는 기관입니다. 예를 들어서 보위부 군 검찰 재판소 그걸 당에서 통제하는 기관인데 당 행정부장을 맡으면서 권력을 당-정-군을 장악하게 됐고요."

◀EFFECT▶ 조선중앙TV

"김정일이 서거하셨다"

2011년 김정일의 죽음.

장성택은 장례위원 명단 19위에 불과했지만, 실상은 김정일 운구차를 모시는 핵심 8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정일의 권력을 승계한 조카 김정은의 바로 뒤에선 장성택.

말 그대로 후견인으로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킬 핵심 인물이 장성택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김정은 뒤에서 걸으며 장 부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SYN▶ 조선중앙TV

"혁명의 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대역죄.

북한은 그가 김정은 체제를 뒤엎는 쿠데타를 꿈꿨다고 합니다.

◀SYN▶ 조선중앙TV

"여러 여성들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 뒤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

사생활도 문란했고, 각종 비리도 저질렀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전문가들은 죄가 상당히 부풀려졌을 거라고 말합니다.

◀SYN▶ 정영태 연구원

"죄목을 백화점 식으로 다 나열했습니다. 장성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그런 죄목들입니다. 너희들 봤지? 봤지?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 그만두거나 아니면 앞으로 다 정리를 할 거다 하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겁니다."

그리고 장성택 제거를 김정은식 개혁으로 미화하는 운동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고 북한 출신 인사들은 말합니다.

◀SYN▶ 한옥정 탈북 가수

"우리 선전대 사람들이 하는 일이 그거에요. 그거 가지고 작품 하나 만들어요. 작품 하나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에게 선전 선동을 해요.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그것을 표현하면서 그런 식으로 공포분위기를.."

장성택은 2인자로서 김정은 시대를 여는 산파 역할을 하고, 북한 사회의 모든 나쁜 것을 뒤집어쓰고 새 시대를 위한 제물로 바쳐졌다는 얘깁니다.

토사구팽.

북한에선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SYN▶ 탈북자

"'살 찌워서 잡아먹는다'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합니다. 일할 수 있게끔 부추기고 직권도 주고, 이미지도 좋아지고 주민들이 너무 쏠리고 이렇게 되면 처리해버리죠."

장성택이 수갑을 차고 보위부원에게 머리가 눌린 채 법정에 섰습니다.

고문을 받았는지 얼굴과 팔에는 검붉게 멍든 흔적도 보입니다.

이후 처형이 이뤄졌습니다.

남한에서 장성택의 최후를 목격한 탈북자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SYN▶ 한옥정

"목덜미 잡힌 그 모습.. 정말 그 사람을 그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을 거예요. 거품이 돼서 빨리 가는 게 낫지 더 이상은 힘들었을 거예요."

◀SYN▶

"목숨은 살려주겠지..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했는데 선전이 아니고 진짜 처형되니까 주민들이 다 깜짝 놀라죠. 그러니까 무섭다. 김정은이 정말 지독한 사람이다."

장성택이 처형된 날 평양 거리는 여느 때처럼 한가로웠습니다.

철저히 통제된 북한 사회의 극과 극입니다.

장성택 처형 과정이 그러했듯, 그 이후도 예측하긴 쉽지 않습니다.

◀SYN▶

"과연 장성택이 수행했던, 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정치인의 위상을 가진 인물이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의문이 들고.."

군부의 움직임은 우리 안보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SYN▶

"군부 기득권 세력과 군부 원로들의 입김이 아직도 북한에서는 통하기 때문에 김정은이 단기간에 군부를 어떻게 장악해 나가느냐가.."

장성택의 죽음 이후 북한 권력 지형은 어떻게 변할까.

김정은의 고모,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는 건재할까.

이틀 앞으로 다가온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

그 행사 자리에 누가 김정은 옆에 있는지 누구의 이름이 먼저 불릴지에 따라, 장성택 다음 2인자는 조금씩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시 언젠가 장성택처럼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게 북한에선 2인자의 운명입니다.

송양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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