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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청암 박태준 회장

설경. 2011. 12. 18. 08:33

 

철인 청암 박태준 회장   ▣ 배움공간

2011/12/17 18:40

 

 

 

 

 

 

 

 

 

철인(鐵人) 청암 박태준 회장(靑巖 朴泰俊, 1927~2011)

 

 

박태준 회장은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는데 있어서 근간이 되고 있는 철강산업을 일으켜 나라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위대한 경영자이다.

 

투철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선구자적 자질과 도덕성을 겸비한 박태준 회장은 제철불모지 대한민국에 제선, 제강, 압연 공정을 모두 갖춘 일관제철소인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건설하여 오늘날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인 포스코를 기반으로 하는 철강대국을 이끌었고, 우리나라가 산업 전반에 걸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포항제철소 야경                                                                      광양제철소 전경

 

 

철의 사나이 박태준 회장은 이전 양산군에 속했었던 동래군 장안면에서 아버지 박봉관과 어머니 김소순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1933년 6살무렵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하였다.

 

일본에서의 소년 박태준은 하모니카를 즐겨 불었고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스키와 유도, 수영 등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비록 식민지 소년이었지만 누구도 얕볼 수 없을 만큼 강하고 튼튼한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와세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이던 1948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귀국하여 군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모니카를 즐겨 불던 중학생 박태준                         유도 2단의 중학생 박태준

 

 

박태준 회장은 육군사관학교를 마친 후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은성화랑무공훈장,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1954년 부인 장옥자 씨와 결혼하였다.

 

  

                        군인시절의 박태준 회장과 아내 장옥자 여사                                       모친 김소순 여사와 박태준 회장 부부

 

 

군인시절 초기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온 박태준 회장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에 취임하였고,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여 다음해에 대한중석 사장에 취임하면서 경제계에 첫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박태준 회장은 당시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텅스텐 수출업체 대한중석을 부임 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경영능력을 발휘하였고, 1967년 제철왕국 대한민국의 시발점인 포항제철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오늘날 포스코를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로 성장시켰음은 물론, 영일만의 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박정희 대통령과 포철 1기 고로 착공식(1970년)                              포철 1기 고로 첫출선 감격의 순간(1973년)

 

 

포항제철은 박태준 회장의 지휘하에 1970년 영일만 백사장에서 제1기 착공식을 가짐으로써 철강한국의 첫발을 내딛었고, 박태준 회장은 이후 1992년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26년 동안을 포항제철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면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의 제4기 준공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여 4반세기에 걸친 기적을 보여주었다.  

 

4반세기 대역사 종합 준공 행사 (1992.10.2)

 

 

박태준 회장은 철강왕으로 세계에 우뚝 서며 1987년 현역 철강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철강의 노벨상인 베세머 금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에는 세계철강업 발전 및 환경보존에 대한 공로로 윌리코프상을 수상하였다.

그외에도 박태준 회장은 독일, 프랑스, 칠레, 브라질, 호주, 페루, 노르웨이 등의 나라로부터 최고훈장을 수여받았고,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금속학회 애터튼 회장으로부터 <베세머 금상> 수상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훈장 수여

 

 

박태준 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교육과 복지 및 스포츠에도 커다란 애정을 쏟았다.

 

1971년 제철장학회를 설립하여 임직원 자녀들의 교육지원과 장학사업의 기반을 만들었고, 이후 포스코 청암재단으로 확대되어 2006년에는 박태준 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포스코청암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제1회 포스코 청암상 시상식 후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한 박태준 회장

 

 

그리고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 설립, 1987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함으로서 포스코와 함께 국내 최초의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하여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포스텍 대학본부 노벨동산 내 박태준 회장 조각상

 

 

또한 박태준 회장은 축구에 커다란 관심을 가져 1960년대 대한중석 축구팀, 1973년 포항제철 실업팀, 1984년 포항스틸러스 프로팀과 1994년 전남드래곤즈 프로팀을 창단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포항과 광양 축구전용구장 건설 등 대한민국 프로축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포항스틸러스와 함께하고 있는 박태준 회장

 

 

한편 박태준 회장은 정치인으로서 4선(11, 13∼15대) 국회의원에 구 민정당 대표위원, 구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지난 1994년 고향 양산에 모시고 있던 모친 김소순 여사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을 만큼 우여곡절을 겪었다.

 

양산에서 박태준 회장 모친상에 노태우 전대통령이 조문하고 있다.(1994년)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신화창조자(Miracle-Maker)라는 칭송을 받았던 박태준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수 많은 업적을 남겼고, 한평생을 청빈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살아 온 위대한 철인(鐵人)이었다. 

 
2011년 박태준 회장은 온 국민, 전 세계 기업인의 애도속에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루어졌고, 정부는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인사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 박태준 회장 약력

 

 

 

육군사관학교 6기

단국대학교 정치학 박사

카네기멜론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셰필드대학교 금속공학 명예박사

버밍엄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워털루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모스크바대학교 경제학 명예박사

고려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1961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 실장

1964 대한중석광업 대표이사

1968 포항종합제철 대표이사

1976 학교법인 제철학원 이사장

1977 국제철강협회 이사

1981 포항종합제철 대표이사 회장

1981 한일경제협회 회장

제11대, 13, 14, 15대 국회의원

1992 제11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1997 제2대 자민련 총재

2000 제3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2003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페루공화국 대공로훈장, 대십자훈장

브라질공화국 십자대훈장, 남십자성훈장

독일연방공화국 공로십자훈장

프랑스 최고훈장 레종도뇌르훈장

노르웨이 국왕훈장

호주 켐페니언급 훈장

한국경영자 대상

세계철강상 윌리코프상

칠레 최고훈장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대십자훈장

포항시민의 상

욱일대수장

자랑스런 육사인상

대한축구협회 공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