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세상 읽기] 루저로 보일까봐.. / 김현정

설경. 2014. 2. 26. 19:39

 

[한겨레] 내 맘대로 뽑은 소치 올림픽 최고의 장면은 쇼트트랙 1000m 결승 직후에 나왔다. 결승선을 일등으로 통과한 빅토르 안이 얼음판에 무릎 꿇고 머리를 짓찧는다. 계산된 제스처가 아니다.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며 철퍼덕… 뒤늦게 링크에 입을 맞춘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었다. 지켜보던 많은 한국인들이 그와 함께 왈칵 눈시울을 적셨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으리라.

이 기분 뭐니? 이래도 되니? 한국이 메달 딴 것도 아닌데, 왜 독립군 승전보라도 들은 듯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되어버린 것인지….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략 60~70%의 대한민국 국민이 빅토르 안과 그의 새로운 조국 러시아를 응원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기현상이다.

빅토르 안 현상에는, 민족보다 국가보다 이념보다 계층보다 그 어떤 전체주의 당위보다도 앞선, 훨씬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개인'의 감정 뇌관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국내외 언론에서 자꾸 그에게 왜 귀화했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어떤 단어들이 어떻게 배열된다 하더라도 답은 단 한 가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생존." 그는 살기 위해서, 운동선수로서 운동선수답게 살기 위해서 러시아를 택했다.

세유백락 연후유천리마. 세상에 백락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가 있다. 비록 명마가 있더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노예들 손에 길러져 욕됨을 당하고 평범한 말들과 나란히 죽는다. 도에 맞춰 채찍질하지 않고 재능에 맞춰 먹이지 않고 울어도 그 뜻을 알아주지 못하면서 "천하에 명마가 없구나" 한탄한다. 진정 좋은 말이 없는 것인가? 좋은 말을 품을 줄 아는 사회가 없는 것인가?

며칠 후 동문 모임 자리가 있었다. 빅토르 안 경기 얘기가 나왔다. 여러 사람들이 실은 그를 응원했다고 하자, 선배 한 사람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그거 큰일이네. 이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듯 뜨악해졌다. 그는 한창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옆에 앉은 동창을 쿡 찌르며 왜 저러니 하는 신호를 보냈다. "저 선배는 자신을 기득권자라고 생각해서 그래. 이런 공감은 루저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럼 선배가 보기에 우린 루저네. 루저 맞네. 근데 천재의 설움은 천재들이 알아줘야 하는 것 아냐? 하하." 우리는 레지스탕스 비밀결사대라도 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계속 속닥속닥했다. 같은 사태를 놓고 어떤 사람들은 위로를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위협을 느낀다.

친한 의대 교수를 만나 의료계 이슈를 놓고 얘기하던 중, 왜 생각이 있으면서도 평소 학회에 가선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루저로 보일까 봐…." 그의 대답이다. 그 솔직함에 나는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의료계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완전 동감이지만 그런 얘기를 함부로 떠들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루저로 보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정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도 짐짓 진심을 덮어놓는 수가 많다. 한국 중년남자들이 공통으로 학습해온 생존법인지도 모른다. 옷에 구멍이 나면 꿰매거나 새로 사 입으면 되지만 체면이 망가지면 대책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루저처럼 보이면 바로 왕따에 돌입하는 게 우리 사회다. 따돌림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평생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숨죽이고 살게 된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이냐? 내 반응은 간단했다. "엄살 떨지 마…."

천재의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의 앞날에 오랜 행복이 깃들기를 빈다. 그대는 누릴 자격이 있다.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전문의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http://media.daum.net/series/109593/newsview?newsId=20140226192006137&s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