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경

최평규 S&T그룹 회장‥"부모. 형제 집 3채 잡히고 창업자금 마련"

설경. 2007. 9. 9. 15:05
'인수·합병(M&A)의 귀재.'

최평규 회장에게 붙은 닉네임이다.

오늘날의 S&T그룹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탁월한 M&A 능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가 직접 창업한 S&Tc를 제외한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2003년 인수),S&T대우(옛 대우정밀·2006년 인수),S&T모터스(옛 효성기계·2007년 인수) 등 현재 주력 계열사는 모두 인수한 기업들이다.

그만의 비결은 뭘까.

사전 준비가 철저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최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회계·재무 지식에 밝다.

독학의 결과다.

최 회장은 "분식회계가 없다는 전제 아래 어느 기업이든 재무제표를 보면 '이 회사는 얼마짜리'인지 바로 나온다. 그게 거의 80~90%는 맞는다"고 말했다.

그럼 어떤 기업을 M&A 대상으로 삼을까.

최 회장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할 때 M&A를 한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인수한 뒤 영업을 잘 할 자신은 없지만 매수 대상이 기업가치에 비해 턱없이 쌀 때다.

하지만 이건 그의 '전공'은 아니다.

이보다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 '장사를 잘 할 자신이 있는 기업'을 선호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기술력이 있는 회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2003년 S&T중공업을 인수한 게 좋은 사례다.

"전 처음에 S&T중공업을 인수할 생각이 없었어요. 한때 창원을 흔들었던 강성노조가 있는 회사를 내가 왜 삽니까. 근데 귀신에 홀린 건지 어느 날 S&T중공업 옆을 지나가는데 그 공장이 왠지 한번 보고 싶더라고요. 다음 날 공장을 둘러보고 그 자리에서 인수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죠.S&T중공업의 뛰어난 기술력을 봤기 때문이죠."

요즘에도 추가적인 M&A를 물색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쪽으로 하나만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1975년 경희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1979년 스물일곱 되던 해에 직원 6명으로 삼영기계(현 S&Tc)를 창업했다.

지난해 대우정밀(현 S&T대우)을 인수한 뒤 S&T그룹을 출범시키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작업복을 입고 매일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현장경영을 중시한다.

취미는 바다낚시.낚시로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소주와 함께 회로 먹는 걸 즐긴다.

골프는 너무 재미있는 운동이라 일을 게을리하게 될 것 같아 치지 않는다.

작년 S&T그룹이 주최한 음악회에서 수십 명의 관현악단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 등 일부 악기가 빠진 것을 지적했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다.

직원들과 노래방에 가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아침이슬''타는 목마름으로' 등 젊은 시절 배웠던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최평규 회장은 대번 그의 어머니를 꼽았다.

그는 "제 평생을 살면서 저는 우리 어머니를 제일 존경합니다.자식 4명을 키운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은 항상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은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 두 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그의 식구들이 상경하면서 생긴 일이다.

 

"어머니는 서울에 오셔서 월세로 방 12개를 얻어 여관을 차렸어요. 이름이 '경화여관'이었죠.처음엔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날부턴가 손님이 줄을 섭디다. 어머니가 매일 이불을 빨아 깨끗한 잠자리를 만든 게 효과를 본 거죠.구석에 처박혀 있는 여관이라 처음엔 신통치 않게 생각했던 손님들도 일단 하룻밤 자고 나면 생각이 바뀌는 거죠.요새 말로 우리 어머니는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그걸 어느 정도 이어받은 것 같고요."

두 번째 일화는 1986년 서울 목동에 아파트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공장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6시쯤 귀가하던 길에 최 회장은 목동 '파리공원' 근처에서 열무와 배추를 파는 할머니 두 분을 발견했다.

그 중 한 분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용돈이 없으시냐,뭐가 부족해 새벽에 이런 걸 파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공터에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것을 자식들에게 나눠 주고도 남아서 파는 중이다. 먹을 걸 버리면 벌 받는다"고 오히려 최 회장을 타일렀다.

이 말을 듣고 최 회장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 내일도 파세요…."

그는 최근 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 집에 일하는 아주머니 한 명 들이자고 말했죠.그런데 어머니는 완고하게 반대하세요. 가정부 들어오면 당신 할 일이 없으시다고.올해 여든 되셨는데… 아마 제가 질 것 같아요."





-요즘은 주로 어디에 계십니까.서울에는 자주 올라오시는지요. (그의 집은 서울 목동이다.하지만 그는 요즘 공장이 있는 부산과 창원에 거의 머물고 있다.)

"서울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올라와요. 촌놈이 돼서 그런지 서울 오기가 싫어요. 서울 스타일이 아닌가 봅니다. 서울 온 지 40년이 돼가는데 말(사투리)도 잘 안 변하고요."

-(그는 이때쯤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담배를 피우시나요.

"하루 한 갑 정도요.스물아홉인가,사업 시작하고 나서 늦게 배웠죠.안 피우려 했는데 사업하고 나서 골치가 아파서 끊기가 힘드네요.끊어야겠죠."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어느 자리건 분위기 맞추는 수준은 되죠.대화가 없는 자리에선 반 병도 못 마셔요. 마음 맞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마시면 꽤 먹습니다.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올 설날에는 한 지인과 한자리에서 13시간 동안 소주 마시다 집에 엎혀 온 적도 있죠."

#'닭발 중개상'이 되다

-(화제는 그의 젊은 시절 얘기로 넘어갔다.) 유년시절은 어땠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로 못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 유년시절 얘기하는 걸 싫어해요.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대학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셨나요.

"전 71학번인데 우리 세대는 거의 공부 안 하고 학교 다녔죠.난 공부를 꼭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공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거 찾아 다녔죠."

-대학 때 아르바이트는 하셨나요.

"서울 휘경동,이문동 근처에서 닭발 장사를 했어요. 당시 동네 시장에 닭집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 닭 잡고 닭발을 버리더라고요. 그걸 보고 '이거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그래서 닭집 주인과 협상을 해 닭발을 무료로 가져왔어요. 공짜 닭발 가져다 동네 포장마차에 팔았죠.그거 엄청 돈이 됩디다. 돈 벌면 통기타 가수 나오는 명동의 맥주집에 가서 하루 저녁에 다 날리곤 했죠."

-연애는 많이 하셨나요.

"여자들은 저를 별로 안 좋아했죠. (좌중 웃음) 로맨스를 알기에는 내 환경이 너무 급박했죠.먹고 살기 힘들었단 말이죠."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셨습니까.

"전 군대를 못 갔습니다. 병역을 기피할 정도로 '백'은 없었어요. 결핵을 앓아 '무종'(징병검사 무등급) 3회를 받고 군대 면제를 받았죠.대학 4학년 때 무종을 받았습니다. 군대 문제가 해결이 안돼 큰 직장에 가지 못하고,센츄리라는 에어컨 제조업체에 들어갔습니다. 여길 포함해 두 곳에서 모두 5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 중 1년간은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도 갔다 왔고요.직장 생활할 땐 '열(熱)공학' 공부를 많이 했죠."

-한때 미국 이민도 갔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이민이 붐이던 시절이 있었죠.1979년 처갓집이 이민 가는데 경상도 말로 '꼽싸리' 껴 갔죠.미국에서 장인 가게를 맡아 해보려고 보조로 왔다갔다 했는데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이건 완전 중노동이더라고요. 이 정도 고생하면 한국에서도 밥은 먹고 살지 않겠나 생각하고 6개월 만에 돌아왔죠.한국 와서 아예 결심을 굳히려고 외무부에 미국 영주권을 반납했어요. 그리고 창업을 한 거죠."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

-창업은 처음부터 순조로웠나요.

"일본 히타치에 연수 갈 때 미국인 맥얼로이라는 분을 알게 됐어요. 미국 이민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오려는데 그분이 미국 자기 집에 찾아오라고 해 한번 갔죠.근데 그 어른이 아주 좋은 기계를 개발했다며 그걸 한국에 가져가면 밥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합디다. 열 교환기 소재인 '핀튜브'를 만드는 피닝머신이란 거였죠.나름대로 열공학 공부를 했던 터라 좋은 기계라는 걸 알았고,수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관세까지 9000만원쯤 했던 기계죠.서울로 와서 17평 아파트를 300만원에 팔아 삼영기계(현 S&Tc)를 세워 직원 6명으로 시작했죠.그리고 아버지 형님 매형 집을 은행에 담보 잡아 LC(신용장)를 열어 기계를 수입하기로 했죠."

-보통사람이라면 겁이 나서 하기 힘든 일인데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기계가 완성됐다고 해서 내가 검사해 보고 싣고 오려고 1979년 10월 미국으로 갔습니다. 3주간 있었는데 그때 고생 많이 했어요. 돈이 없어서 식빵에다 고추장을 발라 먹어봤는데,그 맛 괜찮았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그래서 바로 기계를 수입했나요.

"아니죠.갑자기 문제가 터졌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하려는 전날,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10·26사태죠.'와,이거 사업 시작하는데 정말 큰일 났구나. 이 기계 못 가져가겠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그래서 일단은 포기했습니다."

-그럼 창업을 다시 결심하신 계기는.

"한국에 돌아와서 그해 연말 술만 엄청 마셨습니다. 하지만 1980년 1월12일 행운이 찾아왔어요. 정부가 이른바 1·12조치를 단행해 (원·달러) 환율을 600원에서 480원으로 낮춘(원화절상) 겁니다. 원화 기준으로 볼 때 기계값이 무척 싸진 거죠.그래서 생각을 바꿔 기계를 사기로 결심했어요. 1월20일 그 기계를 통관했습니다. 그날 기계를 트레일러에 싣고 오면서 추풍령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먹는데 눈물이 납디다. 사업이 잘 될지 걱정도 되고요."

-너무 어려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창업할 때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죠.너무 어리다보니 초기엔 명함을 두 개씩 갖고 다녔어요. 하나는 '부장 최평규'고 다른 하나는 '대표이사 최평규'.장사하러 갈 때는 부장 명함 들고 가고,수주하면 대표이사 명함 보여줬죠.그래도 열심히 하다보니 사업한 지 1년 만에 은행 빚을 다 갚았어요."

-회사가 도약한 계기는 무언가요.

"1996년 매출이 150억원까지 커졌는데 또 문제가 생겼어요. 한국중공업이 우리한테 납품받던 제품을 직접 제작하겠다며 주문을 갑자기 끊어버립디다. 2~3개월 고민하다 미국에 갔어요.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니까요. 미국의 세계적인 보일러 회사인 CE라는 곳에 갔죠.그 회사에 물건 좀 사달라고 하니까 의외로 평가가 좋더군요. 1997년부터 해외 수주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거기다 외환위기가 닥쳐 800원 하던 환율이 1600원까지 오르니까 매출이 더 급증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전 좀 운이 따르는 것 같아요. 눈에 안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너 경영인으로서의 최평규

-엔지니어 출신인데 경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재무도 좀 압니다.28년간 기업하면서 세무조사를 좀 많이 받았겠습니까.세무조사 받으려면 재무 공부 안 하면 안 돼요.(웃음) 죽으나 사나 재무 공부했죠.그래서 중소기업이 재미있는 겁니다.사장이 생산부터 재무까지 안 하면 안되거든요."

-경영자로서 중점을 두는 사항은.

"전 솔직히 체계적으로 경영을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러나 한 가지는 알 것 같아요. 경영의 기본은 현장에 있다는 거죠.난 진짜 몸으로 느끼는 현장경영을 합니다. 매일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는 거죠.그러다 직원들 얘기를 듣고 애로사항은 빨리 개선해주죠.'생각 즉시 행동하자'는 게 나의 경영 철학입니다."

-회사 경영할 때 특히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마케팅이 어렵죠.물건은 잘 만든다고 무조건 팔리는 게 아닙니다.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어요.문제는 그걸 파는 거죠.파는 기술은 분명 만드는 기술보다 어려워요."

-(노동조합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S&T중공업 S&T대우 등 S&T그룹의 몇몇 계열사들은 강성 노조로 유명하다.그는 2005년 해고자 복직 문제 등으로 노조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 요즘 노조 문제는 어떻습니까.

"노조 사람들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이에요.언젠가 노조원들이 날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왔는데 이제 그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작년부터 노조가 많이 바뀌기 시작했어요.그들은 과거에는 회사가 망해야 해방구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회사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그거 바꾸는 데 3년 걸렸죠."

-경영권 승계는 준비 중인지요.(그의 맏딸은 최근 S&Tc의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큰애가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이번에 등기이사를 왜 시켰느냐 하면 회사를 꼼꼼히 챙겨보라고 시켰습니다. 혹시 내가 없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자녀인 내 딸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위기가 닥친다면,그래서 우왕좌왕한다면 기업 전체가 흔들립니다. 우리 종업원이 3000명이고,주주가 2만명입니다. 대주주가 기본은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 내 자식들이 경영 능력이 있다면 물려주겠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없으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죠.기업을 일으키는 건 쉬워도 무너지는 건 하루아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리를 옮겼다.손님 20명을 받기에도 공간이 비좁은 한국경제신문 인근의 허름한 카페였다.)

#인간 최평규

-이렇게 회사를 키울 줄 아셨나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어요.하루하루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회장님은 다시 태어나도 기업을 하시겠습니까."매일 밤 11시가 되면 기업하기 싫어져요.자기 전에는 항상 머리가 아파요.나는 왜 매일 이 골치 아픈 일을 해야 하나.계속 후회합니다.그때는 또 술 마시죠.그런데 희한하게 아침에 눈만 뜨면 다시 반짝반짝해져요.몸이 저절로 움직여요.저도 어쩔 수 없어요."

-기업인이 안 됐다면.

"시를 썼을 겁니다.근데 너무 일찍 기업을 했죠." (좌중 웃음)

-혹시 지금도 꿈이 있으신지요.

"꿈이라는 것보다는 자신은 이미 병이 들어버린 것 같아요.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휴가철이 오면 전 걱정이 됩니다.하루나 이틀은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나머지 날을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요.아침에 출근하면 할 일 많잖아요.그렇게 일하다 몇 밤 자고 나면 1년 가버리고요."

-고민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계속 생각하죠.그러면 답이 나옵니다.옛날에는 혼자 생각했는데 요즘은 직원들하고 같이 하죠.회의도 하고.주위에 유능한 사람도 많으니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십니까.

"노래방 가서 노래합니다.직원들하고 주로 갑니다."

-골프는 치십니까.

"안 칩니다.1986년엔가 여주에 있는 골프장에 친구들이랑 딱 한 번 갔어요.근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그래서 '이거 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이후 한번도 안 나갔어요.계속 치면 골프에 빠져들 것 같은데,그러면 회사 망할 것 같더라고요.대신 시간 나면 산책이나 바다낚시를 합니다."

-좌우명은.

"모든 걸 긍정적으로 봅니다. 이거 어렵다,이거 왜 이리 골치 아프냐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해결 안돼요.해결되겠지,분명히 해결된다,그러면 해결됩니다.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미래가 위태롭다고 걱정합니다.맞는 얘깁니다.하지만 전 우리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고 보려고 해요.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우리 국민성은 평범한 수준은 넘어요.근면해요.그러면 앞으로도 먹고 사는 거 잘 될 거예요."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남이 웃을지도 모르지만 삼국지가 만화책으로 나왔더라고요. 20권이 넘어요. 소설책은 읽기 피곤한데 만화책은 하루 저녁에 다 봐요. 삼국지는 전체 흐름이 중요한데 만화책도 할 말은 다 했어요. 한번 읽어들 보세요. 또 '핑'이란 책이 있어요. 연못에 살던 개구리가 연못이 말라 긴 여행을 시작한다는 내용인데 세상과 도전하면서 개구리가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

#젊은이들에게

-어떤 신입사원을 뽑으십니까.

"배짱이 있어야죠.배짱 있는 사람은 책임을 져요.직원들을 많이 다뤄보니까 배짱 있게 큰소리 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유능합니다.말은 해놨지,그걸 지켜야겠지,죽으나 사나 일합니다."

-요즘 젊은 사원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과 틀려요.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일을 안 해요.그런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미국도 그렇죠.10~20년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그렇다고 어쩝니까.내 새끼고 내 자식인데 받아들여야죠.우리가 더 고생해야죠."

-싫어하는 직원은.

"게으른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능력은 상관없죠.회사업무는 사실 고도의 능력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이건 열정하고 통합니다. 명문대 나왔다고 유능한 건 아닙니다.자기 회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그게 유능한 사람입니다."

-지금 20대 젊은이도 회장님과 같은 기회가 올까요.

"앞으로도 젊은이들에게 기회는 올 겁니다. 다만 기성세대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야죠.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야죠.독특한 기술 갖고 소신만 있다면 충분히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도 나올 거예요."

글=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경영은 현장에서

"경영의 기본은 현장에 있죠.난 진짜 몸으로 느끼는 현장경영을 합니다. 매일 현장을 돌며 직원의 애로사항을 빨리 개선해줘요. '생각 즉시 행동하자'는 게 경영 철학입니다."


#젊은이는 배짱이 있어야

"신입사원은 배짱이 있어야 해요. 배짱 있는 사람은 책임을 져요. 배짱있게 큰소리 치는 직원들은 대개 유능합니다. 말은 해놨지,그걸 지켜야겠지,죽으나 사나 일하게 되기 때문이죠,"


#벤처는 목숨을 걸고

"벤처라는 건 엄청난 도전정신을 갖고 죽기살기로 해야 해요. 가족 재산을 모두 담보로 넣고 내가 잘못되면 우리 가족이 망한다는 절박한 각오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목숨바쳐 기술개발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