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경

신재철 LG CNS 사장 나를 깨운 건 '詩 한수'

설경. 2007. 9. 9. 15:36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중략)/무엇을 아무리 얇게 벗겨낸다 해도/거기에는 언제나 앞면과 뒷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오마르 워싱턴의 시 '나는 배웠다' 중에서>

신재철 사장이 늘 되뇌는 시다.

그가 이 시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신 사장은 나이가 들면서 일상의 소소한 지혜와 너그러움을 담은 이 시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는 후배 직장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몇 구절 암송했다.

"내가 행동을 잘 해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게 해야지 행동을 시원찮게 해놓고 남이 자기를 좋아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장 편하게 사는 방법이란 걸 배웠어요. 이 시에는 제 인생철학이 담겨 있어요. 아무리 얇게 벗겨도 앞면과 뒷면이 있다는 표현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과 사물엔 양면이 있어요. 부정하면 안 돼요. 여러분도 두 면을 다 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해요."

 

그는 30대로 돌아간다면 생명과학에 전념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은퇴 후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해볼 셈이다.

하지만 손에 직접 흙은 묻히기 싫다나.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농사 로봇'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한 노동이 삶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1년 쉬어 봐서 아는데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노는 게 재밌지 놀기만 하면 재미없는 인생이야."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땐 플루트를 분다.

2년 전에 배운 플루트이다.

욕심 같아선 바이올린과 색소폰도 배우고 싶었지만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포기했다고 한다.

플루트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악기라면서 후배 직장인들에게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길 권했다.
 
# 모든 것을 걸어라

조직은 여러 사람의 꿈을 안고 가는 생명체인 동시에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냉혹한 전쟁터다. 어떤 일을 맡았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확실한 부가가치를 내야 한다.


# 스트레스는 없다

스트레스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결과가 나쁠 때 나오는 증상이다. 죽어라고 최선 다 했는데 두세 번까지 해도 안되면 어쩔 수 없다. 직종을 바꿔야지.그런데 여태까지 두 번까지 해서 안되는 건 없더라.

# 나이 들수록 호기심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꿈이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보다 적어지는 현상.난 정의를 좋아한다. 이런 새로운 정의에서 보면 요즘 젊어서도 늙은 사람이 너무 많다. 난 지금도 호기심이 많다.



 
신재철 사장이 LG CNS가 개발 중인 가정용 네트워크 로봇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모님께 엄청 혼났어요

-오늘 얘기를 막 해주셔야 하는데 걱정입니다.워낙 젠틀하셔서.

"사생활 까발리는 것은 잘 안 하는데 말이야…."

-까발린다 이런 표현은 젠틀한 게 아닌데요.

"하하하! 내가 완전 코너에 몰렸네요. 난 그거 딱 질색이거든요. 기자들이랑 얘기하면 사담이고 농담이고 진담이고 없이 다 나와요."

-아니 오늘 같은 날 무슨 얘긴들 못합니까.

우선 폭탄주 한 순배 돌리시죠.

"우리 회사에서 룰 하나를 만들었어요. 폭탄주 두 잔까지는 공짜,석 잔째부터는 안 먹으면 1만원씩 내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어진 기억은 있으신지요.

"젊을 때 딱 두 번.한번은 울산 동해전력에 있을 때였지.눈이 막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엄청 마셨어요. 완전히 떡이 되어 집으로 가는 길에 넘어졌어요. 그런데 바닥이 따뜻하더라고.순간 생각했지요. '아~ 이래서 술 마시고 얼어 죽는구나.' 또 한번은 큰처남이랑 마셨는데 빈 속에 진토닉을 계속 부었다가 완전히 갔어요. 그때 장모님한테 얼마나 혼났는지.당신 딸 과부 만들까봐 걱정하신 거지."

-두 번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역시 모범생이시라니까.

"진짜로 간 것은 딱 두 번이지만 술을 좋아했어요."

-담배는 피우시나요?

"예전에 참 많이 피웠어요. 하루 세 갑 피웠나. 참 깊게 빨아들이는 타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죽겠더라고요. 술 좋아했지,담배 많이 피웠지.둘 중 하나를 끊어야겠는데 술을 끊으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고 담배를 끊었죠.1982년이었나. 시가도 한때 많이 피웠죠.시가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뻐끔거리면서 침을 마시는 것이거든.침맛이에요. 지금도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서 연기를 맡아도 나쁘지 않아요. 다시 피워 버릴까?"

-왜 동해전력에 입사했나요.

"동해전력이 돈을 많이 줬어요. 다른 곳보다 40~50% 더 줬지.이게 뭐냐면 한국전력을 민영화하려고 경인전력 호남전력 동해전력 이렇게 셋을 전략적으로 만들었어요. 민전을 육성하려는 정책이었지.1972년도인가,정책이 바뀌었는지 동해전력이 한전에 흡수돼 버렸어요. 마침 적성도 안 맞는 것 같고 해서 에라이~ 튀자 그래서 나왔지요."

-동해전력에서 IBM으로 옮긴 게 그때군요. IBM 초창기인가요.

"초창기는 아니지요. 한국IBM이 1967년에 생겼으니까. 내가 가니까 여든세 번째 입사인가 그랬어요. 우리 앞 기수에서 많이 뽑았거든."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나 친구들 중에 지금도 활동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한 명은 돌아갔고,한 명은 은퇴하고 일본에서 살고있고….친구들은 거의 다 은퇴했지요. 굉장히 감사하며 사는 인생이에요."

-당시 한국IBM의 주요 사업은 뭐였나요.동해전력이랑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메인 프레임이었지.내가 동해전력에서 발전소 건설·관리·인수 쪽에서 일했는데 많이 다른 게 아니라 완전히 달랐어요."

-IBM의 월급이 동해전력보다 더 많았죠,두 배?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많이 줬어요.그러고 보니 내가 월급쟁이 생활 정말 오래 했네.1969년 10월부터 월급을 받았으니까,공백기 1년을 빼면 38년 가까이 월급쟁이를 했네요."

-그때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셨나요. 외국계에 바로 입사할 정도라면.

"살기 위해 했죠.살기 위해 해봐요. 내 주장이 뭐냐 하면 '안 하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다 잘 하게 돼 있다는 거예요. 항상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실력을 길러라'입니다. 실력이 있으면 배짱 좋게 사는 거고 실력이 없으면 완전히 눈치보며 사는 거지요. 남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거예요."

-가장 큰 실력은 어떤 것인가요.

"자기 분야의 톱이 되는 거죠.난 내가 뭘 맡든 톱이 되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해요.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가라.종일 일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곳으로 가라.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돈 좀 벌겠다고 아무데나 가서 일하다 보면 정말 인생 피곤합니다. 희열을 느끼면서 일을 해야지요."


#동해전력에서 IBM으로

-세 곳의 직장을 다니신 거죠.각각의 직장에 대해 평가한다면.

"동해전력은 아주 전형적인 전력회사였지요.그때부터 지멘스(독일 업체)랑 거래를 했어요.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전력이 슬로 인더스트리(느린 산업)라 변화는 크게 없었어요. 하지만 IT(정보기술) 쪽은 변화가 정말 많고 빠르죠."

-LG 같은 국내 대기업과 IBM의 기업문화는 다를 것 같은데.

"확실한 장단점이 있어요. 차이가 눈에 보여요. IBM은 하나의 운영 모델을 갖고 전 세계 지사에 그걸 요구하는 글로벌 컴퍼니(다국적 기업)입니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글로벌 컴퍼니 대부분이 엄청난 분기 퍼포먼스(실적)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고.전략은 둘째 치고 이번 분기에 당장 실적을 보여야 하죠.이런 문화가 기업에 상당한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단점도 있지만.반면 LG CNS는 상당히 중ㆍ장기적입니다."

-LG가 잘하는 것 말고 못하는 것도.

"사장인데도 난 잘 모르겠어요(폭소).양쪽의 장점만 따서 하면 좋겠지."


#딸 얘기는 비밀인데…

-따님 중 한 분이 미술을 전공한다고 들었어요.자녀 얘길 좀 해 주시죠.

"비밀인데.내가 애를 좀 늦게 봤어요. 큰애가 스물아홉,막내가 스물다섯이거든.결혼은 서른에 했는데 애를 서른셋에 낳았나. 그 당시에는 늦은 거였어요. 애들은 모두 결혼을 안 했어요. 이거 별안간 가족사로 들어오네."

-교육은 어떻게 했나요.요즘은 남자보다 실력이 많은 알파걸이 화제인데.

"저는 방임하는데 아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죠.스스로 어떤 바운더리(경계)를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믿으니까. 내가 행동을 제대로 하면 그게 가정교육 아니겠어요. 알파걸이라,그거 좋죠.근데 알파걸이 이중적인 면을 갖췄으면 좋겠어요. 직장에선 알파걸이고,집에선 트래디셔널(전통적)하고.주례를 볼 때 항상 말하는 게 가정의 행복은 평화라고 하는데 알파걸 모드를 가정까지 가져가면 좀 그럴 것 같은데요. 아내로서,엄마로서,직장인으로서 다 하려면 사회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데.기업인으로서 책임감이 있지만 기업이 그걸 다 하기엔 너무 힘들어요."

-원래 인천분이세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6·25가 났어요. 피난을 안 갔는데 1·4후퇴 때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때 외할머니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교육공무원들 피난가는 데 끼어서 제주도로 갔지요. 거기서 살다가 서울로 돌아왔더니 행당동 집이 폭격을 당한 거예요. 그래서 외할아버지 집으로 갔는데 그곳이 인천시 부평입니다. 본적은 서울이고 주소가 인천으로 돼 있었는데 대학교 3학년이 되니까 군대 입영장이 나왔어요. 영장이 그때는 본적지로 나왔어요. 그런데 본적지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2주 안에 안 하면 기피자라 그래서 본적을 인천으로 옮겼지요."

-제주도 기억이 나나요.

"참 희한한 게 아주 어렸을 때,대여섯살 때인데도 제주도 생활이 기억이 나요.

똥돼지 기억도 나고 조밥 먹기 싫어서 진저리치던 기억도 나고.지금도 조밥은 안 먹어요. 갈치도 안 먹어요. 그거 아세요,갈치가 사람을 먹습니다. 어렸을 때 갈치 배를 갈랐는데 손가락이 나왔어요. 그래서 갈치 안 먹어요. 어릴 때 쇼크 있으면 안 좋아요."

-학교는 어디에서 다니셨어요. 존경하는 사람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인천에서 다녔지요.대학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고.서울공대가 그때는 공릉동에 있었지.육사랑 서울여대 옆에.초등학교 때 담임인김진화 선생님을 존경하지요. 3년 동안 맞아가면서 배웠어요. 또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는 선생님의 행동이 어린 나에게도 보였어요. 그래서 난 실제로 같이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을 존경한다고 안 해요. 100미터 밖에서 대단해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왜 공대에 가셨어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때는 수학 잘하면 공대 갔죠.안 풀리는 수학 문제 한나절 동안 붙들고 어떻게든 풀어냈어요. 그게 논리력과 상상력을 굉장히 많이 키우거든.사방을 찔러보는 거야.전공은 선배가 전기공학과가 좋다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갔어.난 사실 수학 선생님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정은 어떻게 챙기세요.

"일주일에 한 번쯤 밥을 같이 먹나(신 사장은 남 얘기하듯 했다).그것도 쉽지 않아요. 만회가 잘 안되네.균형 맞추는 게 힘들어요. 직원들에게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강조하는데.직원들에겐 연월차 확실히 챙기라고 하지요. 내가 먼저 가버리니까. 작년만 해도 2주 다 썼죠.내가 먼저 보여줘야 먹히지 말만 하면 되겠어요."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누가 소개해줬어요.소개받은 지 1년 만에 골인했지.IBM 다닐 때.내가 1976년에 결혼했으니까. 와이프는 불쌍한 사람을 구제해줬다고 하는데.코멘트 잘못하면 밥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게 정설로 돼 있어요."


#40세 전무ㆍ낙천주의자

-개인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은.

"글쎄 내가 IBM이나 CNS로 온 거 다 잘한 결정인 거 같고.조직이 눈에 보이게 성장할 때 가장 보람이 있어요. 조직이란 게 사실은 여러 사람의 꿈을 안고 가는 거거든.조직이라는 건 생명체라서 성장이 없는 생명체는 피곤합니다."

-직장생활 오래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임원이 되기 전까진 편하더라고요.일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40세 때 영업총괄전무가 됐는데 힘들더라고.밑에 있는 임원들이 한 명 빼놓고 다 나보다 5~8년 선배야. 이런 관계는 1980년대엔 없는 모델이었거든.아,힘들더라고."

-승진이 빨랐네요.특별한 게 있었나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사석에서는 선배고 업무에선 지시를 했지.글쎄요 무슨 이유로 날 따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넘어갔어요.

뭔가 있다기보다 인간관계에서 특별한 룰은 없는 거 같아.자기 룰에 맞게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거지.또 조직이란 건 끊임없이 서로를 평가하잖아요.

각자 의미 있는 부가가치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미국사람 인도사람 독일사람 등이랑 일할 때도 특별한 룰이 없더라고.이 사람 다르고 저 사람 다르니까.

센서티브(섬세)하게 이해하면서도 무섭게 일을 챙겨야 하는 게 룰이라면 룰이지.물론 서로간에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고.그렇게 몇 달 힘들었는데 잘 넘어가더라고."

-CEO만 몇 년 하신 거죠.용인술이 많이 쌓였을 거 같아요.

"IBM에서 8년가량 했고 LG CNS에서 1년 좀 넘었고.용인술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시시각각 변하죠.사람을 이끈다는 게 참 어려워요.

될 사람에겐 베팅하고 안 될 거 같으면 과감히 접고.이 사람이 하는 것은 된다,이런 확신을 사람들에게 줘야 하니까.

일에 베팅할 때 선택을 잘 해야 돼.조직 내에서 '이 친구가 하면 되겠다,퍼포먼스를 올릴 수 있겠다'하는 믿음을 줘야 하지요. 동기를 부여하고 전 직원이 한마음으로 뛸 수 있는 환경과 비전을 줘야지."


#조직 리드하는 직원이 좋아

-어떤 부하 직원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의미 있게 조직을 리드하는 사람.하지만 조직을 모르고 겉도는 사람이 너무 많아.이런 사람은 참 위험하죠.난 항상 현장에 가서 귀동냥하고 보기 때문에 보인다고.현장이 핵심이죠.현장주의자를 좋아하지.모든 문제와 해결책이 거기 있거든.현장에 가면 전체가 보여요.전 현장 운영을 철저히 믿는 사람입니다.일선이 강하면 회사가 강합니다.일선이 강하지 않고 관리자가 강하면 그게 문제죠."

-실패해서 야단맞은 적은 없었나요.

"왜 없어요.내가 사인을 잘못해서 소송이 걸려 일부 사업부 가처분도 당해봤어요.전무 때 업무정지 당하고.상당히 큰 일이었지.후회는 없어요.당시로는 최선의 판단을 했으니까.제가 스트레스 잘 안 받는 타입입니다. 논리는 간단해.자신 없는 거 안 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고.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요."

-조종사보다 비행 시간이 많았다고 하던데.

"IBM에서 일할 때 그랬죠.정말 많이 탔지.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였어요. 일본에 있을 때 2년반 동안 26개 국가 헤드쿼터를 다 돌았어요. 굉장히 피곤했어요. 큰 나라는 1년에 네 번,작은 나라는 한두 번.그 사이사이에 미국 열 번 정도 갔다 오고.일주일에 하루 정도 사무실에 있고 나머지는 다 출장이었어요. 미국 애들은 참 강합니다. 이런 식이에요. 아침에 밤 비행기로 호주에 내리고 안 자고 바로 나와서 일해요. 우리는 한잠 자고 나왔으면 좋겠는데.가는 곳마다 연설하고 인터뷰하고 그래야 해요. 미국계 기업은 아랫사람들이 준비를 안 해 줘요. 내가 다 해야 돼. 그렇게 며칠 일 끝나면 바로 싱가포르로 넘어와.이게 또 밤 비행기야.아침에 샤워하고 나와서 바로 일해.일정 끝나면 주말에 동양 사람들은 지쳐서 쓰러지고 자다가 낮 비행기 타고 가는데 얘네들은 주말에 가족이랑 보내려고 밤 비행기로 가. 매형이 파일럿인데 비행시간을 따져보니까 내가 더 많더라고."

-국내 기업으로 옮기고 나서는 그렇게 힘든 출장은 없어서 좋겠네요.

"그땐 참 힘들었어.그런데 사람 몸이란 게 정말 신비로워요.마음먹고 적응하기 나름이야.내가 자야겠다 하면 자고 아니면 깨 있어.뉴욕까지 갈 때 자야겠다 맘먹으면 도착할 때까지 자다가 바로 깨고,안 자야겠다 하고 책을 읽으면 한잠도 안 자요.정말 사람한테서 무한한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무한한 능력을 조직원들로부터 어떻게 끌어낼 수 있나요.

"환경을 조성해 줘야죠.'모티베이션'(동기화)이 중요해요."

-지금까지 크게 힘든 일은 없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없었죠.순탄한 인생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전 복 받았어요.회사 일이 어렵지.잘 얘기는 안 하지만 IBM 나올 때 좀 힘들었지.직원들의 불법행위가 있어서 내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왔으니까.IT 서비스가 항상 컴플레인(민원)이 많이 들어와요.그래서 확실히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 때가 아니면 안 해요.불가능한 일에 손을 안 대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손을 안 대요.CNS 올 때도 그랬어요.내가 확실히 분명히 할 수 있을 거 같았어.그뿐이야."

평생에 단 두 번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는 신 사장.이날은 어땠을까.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다.그러나 그는 실로 오랜만에 취했다고 했다.

정리=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