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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전 교장은 76세까지 35년간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던 한국 중등교육의 산증인이다. 퇴임 후 양정고 재단 이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정부가 평준화 정책을 고집하면 할수록 일선 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를 교육시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며 “학교에 자율성이 최대한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73년 42세 때 양정고 교장에 취임한 엄 전 교장은 서울대 문리대 교수 출신으로 양정의숙 설립자인 춘정(春庭) 엄주익 선생의 손자이다. 엄주익 선생은 구한말 고종 황제의 계비(繼妃)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친정 조카다.
그는 자신이 교장으로 재직했던 35년이 대한민국 중등교육의 변혁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취임 직후 고교 입시가 평준화 정책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평준화 실시 30년 이상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교 평준화가 정착되려면 학교의 자율성, 학생들의 능력에 따른 수업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너무 간섭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반 편성을 하고 차별화된 교육을 하고 싶었어요. 영어우수반, 수학우수반, 예술우수반 등을 운영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 규제와 반발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수학여행을 갈 때 버스를 타고 갈지, 기차를 타고 갈지도 교육청에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규제와 간섭이 심했다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의 특수목적고 옥죄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외고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설립 목적에 따라 잘 운영되는지 감독을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설립 인가를 취소한다는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서 엘리트 교육을 통해 나라의 인재를 키워내는 것인데 지금의 평준화 교육은 ‘기회의 균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만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목동에 있는 양정고는 최근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80여명이 합격하고, 작년에 미국 뉴욕주립대 제네시오대학과 자매결연을 해 올해 이 학교로 진학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엄 전 교장은 자신은 학력 지상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양정고의 건학 이념이 ‘바른 인간 교육’입니다. 학력과 함께 인성교육을 늘 강조했죠.” 실제로 엄 전 교장은 학생들 사이에 ‘깐깐한’ 교장선생님으로 통한다. 요즘도 그는 복도를 지나가다 선생님에게 인사 안 하는 학생들을 불러 야단을 친다고 했다.
35년 교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모교 출신 손기정 선생이 독일에서 가져온 나무 한 그루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지난 1988년 만리동에서 목동으로 학교가 이사를 하면서 이 ‘월계관수’를 서울시에 기증하고 손기정 선수 기념공원으로 만들었다.
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양정고는 앞으로 100년의 목표를 ‘세계화’로 잡았다. 엄 전 교장은 “양정고 재단은 국제사회에서 활동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국제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석배 기자 sbahn@chosun.com]
[정혜진 기자 hj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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