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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명은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지구촌 시대를 맞이해서는 서로 뗄 수 없다. 전세계가 자본주의로 일색화되는 상황에서 상업문화가 전 지구의 문명을 주도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양한 문화로 이루는 지구문명을 해침으로써 비서구 문화는 물론 서구 문화에조차 위협적이다. 다양성을 상실한 문화로 이루는 문명은 결국 타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 주로 검토할 교과서는 '사회·문화'다. 특히 Ⅳ단원 1-(2) 문화 이해의 관점은 필수적이다. 문화의 보편성과 상대성, 그리고 총체성은 따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 총체성의 관점에서 보편성과 상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많은 사례들에 적용할 수 있다. 논술 문제 역시 그 관계가 드러나는 구체적 상황에 주목한다.
◆ 문화 이해의 관점과 응용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따로 보편성, 상대성, 총체성을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왜 총체성의 관점에서 보편성과 상대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만 말하자. 총체성은 특정 문화 현상을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 그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주어진 환경, 연관된 다른 문화 현상과의 관계를 함께 고려한다는 것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문화라도 거기에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가령, 동서양 의술의 차이를 보자. 서양이 인체를 자연과 떼어놓고 기관을 각각 부품처럼 보면서 치료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양은 인체와 자연, 기관과 기관의 연관을 중시하면서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확실히 상대적이다. 그러나 이 둘은 인체의 건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지닌다.
오늘날 총체성의 관점은 특히 중요하다. 전 지구적인 문화 교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총체성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총체성은 문화와 환경, 문화와 문화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러나 오늘의 문화는 이 관계가 깨어지고 있다. 환경과 상관없이 전 세계 문화를 휩쓰는 건 상업문화다. 이 상업문화의 광풍은 세계적 차원은 물론 각 나라, 각 민족 내부의 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돈 되는 문화'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느냐로 문화적 우월성을 입증 받는 시대가 돼버렸다.
◆ 대중문화에서 특히 경계할 것
교과서가 정의하는 대중문화란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 의해 탄생하고 향유되는 표준적인 문화형태'('사회·문화'Ⅸ-3-(3))다. 이 정의대로라면 대중문화에도 장점은 많다. 이를테면 패러디 문화나 지역 축제 같은 것은 확실히 대중 스스로가 참여해서 이루는 문화다. 이로써 문화의 생산과 유통이 다양화된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다. 그런데도 대중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것은 한마디로 상업화에 대한 우려다.
문화는, 제러미 리프킨의 말대로 체험과 소통이다. 스스로 참여하여 만드는 문화는 자연과 이웃을 나와 연결해 나를 '나-너-우리'로 확장한다. 나에서 비롯해 세계와 어울리고, 그 어울림에서 나를 재발견한다. 한마디로 문화는 나와 세계가 맺는 관계다. 그러나 상업문화는 그 반대다. 그것은 내게서 비롯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어진다. 돈만 내면 언제든지 그것을 누릴 수 있기에, 굳이 불편하게 참여할 의사가 없다. 휴일에 하루 종일 TV 앞에서 조는 아빠,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부터 켜는 아이들, 주말 나들이랍시고 놀이동산에서 자유이용권 들고 돌아다니는 가족들…. 그 문화는 거대 자본이 생산한 것이다. 대중은 그저 소비할 따름이다. 나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대신 주어진 세계에 갇히고 만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것이 교과서가 경계하는 대중문화의 부정적 측면이다. 결국 문제는 참여 여부에 달린 것이다.
◆ 지구문명의 길
문제는 참여의 길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데 있다. 문화다양성 협정을 맺으면서 발버둥치지만, 소비문화가 아닌 것을 찾을 수 없다.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지역축제도 얼마의 수익을 올렸나가 평가기준이다. 각종 영화제나 비엔날레들에서도 대중은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른바 '스타'들의 레드 카펫 행사가 유일한 관심거리다. 그나마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가지는가 싶었지만, 스크린쿼터 축소로 블록버스터 아니고서는 극장에 걸릴 기회조차 사라졌다.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같은 자발적인 대중문화의 활로는 여간해서 찾을 수 없다.
문득 서구문명을 보편문명이라면서, 전 지구인이 이 보편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헌팅턴의 발언이 떠오른다. 그의 오만은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서구문명, 자본주의 일색의 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적 재앙의 시작이다. 모든 문명의 말로가 문화의 획일화, 그로 인한 건강성 상실에서 비롯됐다.
이 재앙에서 벗어날 길은 참여뿐이다. 소수문화를 살리는 운동, 그 문화들 간의 네트워크, 그 네트워크의 세계적 확산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유일한 활로다. 가까이는 삭막한 도시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일, 잃어버린 지역적 특색을 되살리는 일, 자동차 없는 시공간을 만드는 일, 재래시장을 살리고 노점상 거리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 하다못해 명절 선물이라도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려는 작은 실천이 거대한 태풍을 부르는 '북경 나비의 날갯짓'이리라.
※ '우한기의 교과서로 주제잡기' 연재를 마칩니다.
[우한기 청솔일이관지논술대표·이투스논술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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