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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선택ㆍ수강신청ㆍ직장 고르기…걱정마! 엄마가 다 해줄게

설경. 2007. 9. 21. 00:37
◆ 헬리콥터 맘 끝모를 자식 챙기기◆

★ 치과의사 김철호 씨(가명)=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김 원장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항상 아버지와 함께한다. 대기업 임원을 지낸 아버지가 치과를 개업할 장소를 결정했고 마케팅도 아버지가 전담한다. 광고 업자를 만날 때도, 기자를 만날 때도 아버지 인맥을 통해 만나고 아버지가 그 자리에 함께한다. 병원을 찾는 고객 중 상당수도 아버지 소개로 찾아온 환자들이다. 김 원장은 "유학을 간 것도, 전공을 선택한 것도 아버지의 결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미혼인 김 원장은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고 나이(36세)도 차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여자친구를 며느릿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50대 중반 주부 차 모씨(서울 청담동)=그는 올해 초 A증권사에 입사한 딸 주연 씨(가명)를 매일 아침 회사가 있는 여의도까지 태워다 준다. 딸이 취업한 증권사도 그녀가 손수 딸의 손을 잡고 취업설명회에 참석해 '찍어줬던' 회사다. 차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해오던 일이라 아침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주연 씨는 어머니와 자주 통화하는 것을 이상한 눈치로 쳐다보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 말씀이라면 회사 일보다 우선시하게 된다.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어머니 전화를 받고 갑자기 귀가해 버려 동료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주연 씨의 업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 자란 자녀의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모든 것을 점검하는 헬리콥터 부모.

자녀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됐던 부모들의 자식 챙기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유치원에서 도화지에 선 긋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시작으로 자녀의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한 '헬리콥터 부모'들은 대학과 학과 선택, 이어지는 공부를 일일이 코치하고 졸업 후에는 직장 선택과 배우자 선택, 이후의 삶까지 모두 '조종'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자녀 인생의 조언자를 벗어나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헬리콥터 키즈'.

이들은 부모의 간섭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여기고 의존하기까지 한다. 아예 골치 아픈 직장생활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금력이 넉넉한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M&F(Mother & Father)펀드족'까지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헬리콥터 부모가 늘어나는 원인을 상대적으로 부유해진 경제력, 줄어든 자녀 수,부모의 고학력 등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자녀가 여럿이고 생업에 종사하다 보면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지만 요즘에는 풍족해진 시간과 돈을 한두 명의 자녀에게 쏟아붓다 보니 나타나게 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왕자와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학원 스케줄을 짜고 차에 태워서 이동시켜주는 '비서실장' 역할을 어머니가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모나 자녀 모두 이 상황에 익숙해져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자녀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행동은 반대로 하는 부모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한익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헬리콥터 부모와 마마보이, 파파걸의 관계는 육아 과정에서 분리개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분리개별화란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보통 만 3세가 되면 시작된다. 그러나 이때 분리개별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모와 자녀가 지나치게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지나친 상호의존적 심리현상은 부모의 경우 '내가 없을 때 우리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큰일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과잉보호 형태로 나타나며, 자녀의 경우 '부모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하는 분리불안장애를 겪을 수 있다.

유 교수는 "분리개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부모(특히 어머니)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며 "남편이 무능하거나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일 경우 자녀와 정신적, 육체적으로 떨어지기를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성도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사소한 결정이나 행동에도 부모가 계속 개입할 경우 자식들은 타인에 대한 의존심이 커져 자신감, 독립심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남궁 교수는 "헬리콥터 부모와 자녀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이라며 "부모-자녀 간 밀착이 '병'은 아니지만 병적인 경우도 있는 만큼 가족이 동시에 상담이나 정신 치료를 받아 관계 설정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경옥 차장 / 이은아 기자 / 현경식 기자 / 이한나 기자 /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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