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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칼럼] 입시학원 전락한 외국어고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설경. 2007. 9. 21. 00:52
언론보도에 따르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국어고 신설 협의를 전면 중단, 추가 신설을 금지키로 한 데 이어 외고를 특목고가 아닌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2008년부터 대학입시에서 내신이 더 강화되기 때문에 외고생들이 대학 가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6년 외고 경쟁률은 8.38:1로 2005년도의 6.07:1을 앞섰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고에 가기 위해선 외국 거주 경험이나 오랜 기간의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중학생들은 과학고를 준비하다 실력이 부족하면 외고로 돌린다고 한다. 어떻게 과학 특기자가 외국어 특기자로 돌변할 수 있을까.

현재 외고는 진정으로 외국어에 관심 있고 소질 있는 아이를 키워준다기보다는 과거의 명문고를 대신하거나 입시학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고에는 클럽활동이나 특기적성교육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하루 종일 공부만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각 외고들이 SKY대학에 졸업생의 몇 퍼센트를 보냈는지가 공개된다. 외고의 수준이 명문대 입학생을 얼마 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외고가 입시명문이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학업우수자가 외고에 진학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외고생이 대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외고 입시에서 어학 특기보다는 수학이나 다른 과목 성적을 함께 보기 때문에 결국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외고에 들어간다. 외고 졸업생이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상위대학들이 논술을 본고사로 도입하면서 논술교육을 실시하는 외고가 더 매력적이 되었다. 또한 대학들은 내신을 무력화시키고 외국어 특기자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이 같은 입시학원으로서의 외고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외고를 전문고로 전환시켜 외국어에 소질 있는 학생들이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연마하는 학교로 만들면 된다. 이 때 외국어는 영어나 일어, 중국어처럼 모든 사람이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잘 하지 않아서 국가가 전략적으로 전문가가 필요한 중요한 언어(critical language)를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

입시 방법은 미국의 마그넷 스쿨을 참고하면 좋겠다. 수학능력 커트라인만 넘는 학생을 일차로 추린 후에는 추첨을 하면 된다. 가령 영어나 국어 혹은 기타 외국어 시험에서 80점 이상이면 모두 외고에 진학할 자격을 주고 자격자 중에서 지역에 따라 추첨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외고가 입시명문고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외고가 입시명문고의 위치를 상실하면 지원생도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외고 입시에서 내신 비율을 올리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외고를 더 명문대 진학코스로 만들게 될 것이다. 중학교 3년간 내신도 입시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이므로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만일 외국어에 대한 수요가 많다면 특성화고로서의 외고는 얼마든지 허가해도 좋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들여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다.

또 하나는 외고출신이 대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현재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일부 대학의 입학전형에는 주당 영어 시수가 명시돼 있는데 풀어서 말하면 외고생만 지원하라는 말이다. 이는 위헌소송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과학특기자나 전략적 언어 구사자에게 대입특전을 주기는 하지만 인기 많은 언어 특기자에게 대학특전을 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입 특혜가 없어도 세계화시대의 민주시민은 외국어를 열심히 배우게 돼 있다. 외국어를 잘 하면 졸업 후 직장을 얻는 데에도 도움이 되므로 입시에서 특전을 주는 것은 이중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덕으로 키워질 수 있는 외국어 특기자에게 대입에서 혜택을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불공평한 일이다. 외고입학이 대입에 유리하지 않으면 외고 경쟁은 급격히 하락할 것이고 외국어 특기자들만 외고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외고 개혁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도를 급격히 변화시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제도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부터 새로운 제도를 적용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글은 조기숙 교수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마법에 걸린 나라’에 게재된 글로 조 교수의 동의를 얻어 본보에 게재한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