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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한국의 비즈니스 스쿨 열풍

설경. 2007. 9. 21. 00:58
[중앙일보 박소영] 필자는 일본 최초로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 비즈니스 스쿨(대학원) 인가를 문부과학성으로부터 받아 2005년 4월부터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문부과학성 산하 학교법인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경영학 석사(MBA) 학위 수여가 가능해졌고, 학교 건물이나 운동장 등 캠퍼스 없이도 사이버 상에서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 대학은 그렇게 운영하는 일본 내 첫 학교다.

원격수업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발달해 있다. 특히 MBA 과정이 많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미국 비즈니스 스쿨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 많다. 교수도 미국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젊은 사람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한국에서 실무 경험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경영은 실무진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전후 일본 기업을 세계화하는 데 기여한 경영자(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 가와카미 겐이치 등)들은 모두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경영은 감성이지 이론이 아니다. 계획이 아니라 추진력이며, 전략이 아니라 결과다. 한국에서도 대기업 창업 1세대는 모두 실무 출신으로, 학문에 바탕을 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감성과 추진력 면에서 유난히 특출한 재능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이미 타계했거나 은퇴했는데, 과거 학력 때문에 역대 정권으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현재 한국 사회에선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엘리트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경제계는 외환위기 이후 미국 방식을 대담하게 도입하고 있다. 특히 경영자 예비군들에게 미국 비즈니스 스쿨 방식을 익힐 것을 장려하고 있고, 이런 경향은 날로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현실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고전하는 것이나, 삼성전자의 수익력이 떨어진 것은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만은 아니다. 꾸준히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력이 부족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미국 비즈니스 스쿨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하나는 하버드대의 사례분석 교육방식(case method))에서 알 수 있듯 접근방식이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초속, 혹은 광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버드처럼 하나의 케이스를 완성하는 데 9개월이나 걸린다면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유튜브나 마이 스페이스 등 인터넷상에서는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자신이 경영자라면 어떤 의사결정을 하겠는가를 공부하지 않으면 실무적인 힘을 기를 수 없다. 하지만 대학 교수들은 실무 경험이 없어 현재 진행형인 사례들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또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은 프레임워크를 가르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즈니스는 기존의 프레임워크를 깨부수는 데서 시작한다. 따라서 필자가 운영하는 학교에선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여러 사고방식을 훈련한다.

한국은 외환 위기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낡은 굴레를 벗어던지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그 뒤 더욱 미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최첨단 온라인 원격수업이 가능한 세계 유수의 환경을 갖췄으면서도 그 내용은 미국의 낡은 교육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그 결과 실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머리만 크고 논리만 밝히는 졸업생들을 대량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기업의 성장동력에 급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중국과 대만·미국·일본의 경쟁에서 한국이 스스로 연마해야 할 기술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현 상황을 직시하고, 새로운 관리자 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

정리=박소영 기자 ▶박소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olive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