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생사 넘나들던 囚人의 신앙편지… 황대권씨 세번째 책"

설경. 2007. 9. 21. 01:29

[동아일보]

‘저는 그 악명 높은 수사기관의 지하실에서 죽기도 전에 이미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은 없고 오로지 동물적 본능과 죽음에의 끈끈한 유혹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그토록 믿었던 자기 자신을 배반했을 때의 심정을 이해하시겠는지요.’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사진) 씨가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동기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간 감옥에서 살았던 황 씨는 “결국 믿을 수 없는 자신을 버리고 절대적인 그 무엇을 찾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황 씨의 세 번째 저서 ‘황대권의 신앙편지-바우 올림’(시골생활)은 황 씨가 감옥에서 10년간 편지로 교유했던 ‘디냐 자매’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정리한 것이다.

한 평도 안 되는 독방 속에서 벽과 담장에 막혀 외부로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내면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인(囚人)의 언어는 사색적이고 치열하다.

‘징벌방에서의 피정’일 때는 더욱 그렇다. ‘방안에 갇힌 채로 아무것도 없이 맨몸뚱이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인간의 본능이 꾸역꾸역 기어 나옵니다. 마구 먹고 싶고, 삿된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의 누구 하나 제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는 소외감에 떨었습니다.’

감옥 속에서 신앙의 문제는 곧바로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 “제게 가톨릭은 한 번 믿어 볼까 하는 망설임에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가 마음을 빼앗겼던 인물은 순교자 유대철 베드로. 13세의 나이에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옥졸의 손에 목 졸려 죽은 ‘어린 성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 앞에 ‘베드로’의 우리말 ‘바우’를 붙였다.

공소를 관리하는 안동교도소 가톨릭 회장을 지내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뿐 아니라 다른 재소자들의 신앙까지 관리할 책임을 맡는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신자라고 해도 ‘도둑놈은 도둑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절망과 고민, 신앙적 진보를 향한 열정을 쏟아낸다.

황 씨는 또 암에 걸린 디냐 자매를 위해 의학 서적들을 독파한 뒤 인체에 관한 깨달음,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사색을 펼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감동은 무엇보다도 상처와 분노를 이기는 용서와 사랑, 희망의 노래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