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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국어시간에요, 선생님께서 김지하에 대해 아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해서 제가 손들고 '화가'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김지하 할아버지가 시도 쓰나봐요. 국어 교과서 첫 장에 '새봄'이라는 시가 실렸는데 선생님께서 다음 시간까지 조사해오라고 했어요."
김지하 시인을 아이가 화가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왜 화가라고 생각하지?"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벽에 걸린 '난' 그림을 가리켰다. 그리고 김지하 '묵란전'을 관람했을 때 직접 받은 사인을 내밀었다. 김지하 시인은 그때 아이에게 '건강하고 아름답게!(지하)'라고 엽서에 사인해 준 것이다.
한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시인이 초등학생의 눈에는 화가로 비친 것이다. 내가 출강하는 학교에서 학기마다 수강생에게 꼭 김지하의 시를 읽히면서도, 정작 내 아이에게는 김지하의 시 한 편도 읽어주지 못했으니 모두 내 잘못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온몸에 새순 돋'(김지하의 '새봄 2')는 3월이다. 나의 대학 시절만 해도 감히 접할 수 없었던 김지하의 시를 아이의 교과서 속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그의 시는 시화전을 비롯한 집회에서 늘 누런 광목천에 대자보로 내걸렸으며, 목메어 갈구하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읽혔다. 시 품평회 후 뒤풀이로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그의 시 노래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타는 목마름으로')로 시작해서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애잔한 곡조를 뽑다보면 텅 빈 우리의 마음도 어느새 서서히 정화되곤 했다.
"벚꽃 지는 걸 보니/푸른 솔이 좋아//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벚꽃마저 좋아"(김지하의 '새봄 9')
4행으로 함축된 이 시 또한 그 시절 우리가 노래했던 것처럼 각각 개성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모심'의 마음일 게다. 새봄이다.
"우주를 껴안고//나무 밑에 서서 생명 부서지는 소리/새들 울부짖는 소리"(김지하의 '새봄 4')를 들어보자. 생명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화가 시인의 '흰 그늘'의 미학과도 잠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손정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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