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두어 차례 강원 태백시로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자원 발령을 받아 간 곳이 태백이라 나름 감회가 깊었다.
20대 후반의 몇 년을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광산촌의 열악한 환경과 피폐한 광부들의 삶을 지켜보며 깊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키우는 것마저도 호사스러운 취미로 여겨질 만큼 그곳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석탄가루 풀풀 날리는 도로와 도시의 배경을 이룬 그 탄더미가 어제의 풍경처럼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난 겨울 태백·고한·사북 등지를 돌며 나는 깊은 충격과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곳은 고산 관광지로 모습을 바꾸어 탄더미 같은 건 어디를 둘러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북의 강원랜드가 모태가 되어 고한에 하이원 스키장 등 지금 그곳에는 거대한 고산 유흥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인구 5만명도 되지 않는 곳에 모텔·여관·호텔·콘도 같은 것들이 들어서 예상 가동 객실수가 1만개를 육박한다고 한다. 신축 건물의 용도도 90% 이상이 호텔·여관·술집 같은 것들이라고 하니 앞날의 풍경은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훤하다. 고산지대에 또 다른 신촌, 또 다른 홍대앞, 또 다른 압구정동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난개발이 지역 주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태백이 태백다울 수 있었던 근원적 특성을 가차없이 훼손하면서 이루어지는 유흥도시로의 변모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태백을 개발하고, 태백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정감록'은 "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향이 나온다"고 하였다.
'정감록'에서 말한 이상향이 바로 지금의 태백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석문은 경북 봉화에서 태백지역으로 들어오는 구문소(求門沼)를 일컫는 것이다.
'정감록'에서 무릉도원 격으로 지칭한 터전의 오늘날 풍경은 안타깝게도 난개발의 표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 연못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劍龍所)가 있는 땅, 우리 민족의 시원을 간직한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풍광을 무자비한 관광자본으로 파괴하는 안타까움을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 박상우/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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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의 몇 년을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광산촌의 열악한 환경과 피폐한 광부들의 삶을 지켜보며 깊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키우는 것마저도 호사스러운 취미로 여겨질 만큼 그곳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석탄가루 풀풀 날리는 도로와 도시의 배경을 이룬 그 탄더미가 어제의 풍경처럼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난 겨울 태백·고한·사북 등지를 돌며 나는 깊은 충격과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곳은 고산 관광지로 모습을 바꾸어 탄더미 같은 건 어디를 둘러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북의 강원랜드가 모태가 되어 고한에 하이원 스키장 등 지금 그곳에는 거대한 고산 유흥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인구 5만명도 되지 않는 곳에 모텔·여관·호텔·콘도 같은 것들이 들어서 예상 가동 객실수가 1만개를 육박한다고 한다. 신축 건물의 용도도 90% 이상이 호텔·여관·술집 같은 것들이라고 하니 앞날의 풍경은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훤하다. 고산지대에 또 다른 신촌, 또 다른 홍대앞, 또 다른 압구정동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난개발이 지역 주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태백이 태백다울 수 있었던 근원적 특성을 가차없이 훼손하면서 이루어지는 유흥도시로의 변모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태백을 개발하고, 태백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정감록'은 "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향이 나온다"고 하였다.
'정감록'에서 말한 이상향이 바로 지금의 태백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석문은 경북 봉화에서 태백지역으로 들어오는 구문소(求門沼)를 일컫는 것이다.
'정감록'에서 무릉도원 격으로 지칭한 터전의 오늘날 풍경은 안타깝게도 난개발의 표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 연못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劍龍所)가 있는 땅, 우리 민족의 시원을 간직한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풍광을 무자비한 관광자본으로 파괴하는 안타까움을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 박상우/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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