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문학 숲, 논술 꽃]최인훈의 '광장' ... 선택은 무엇이 결정할까

설경. 2008. 4. 8. 15:15
[동아일보]
'광장'의 명준은 왜 남북 아닌 중립국행을 택했을까
최인훈의 '광장'은 수능이나 논술고사에 가장 많이 출제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60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남북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그 가운데서 이상적 삶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치안당국 취조실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월북하여 공산당의 간부가 된다. 그는 국립극장 무용수인 은혜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남북의 혼란한 정국 때문에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 가지 못한다. 6·25전쟁이 터지자, 명준은 인민군 신분으로 서울에 내려와 자신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한 옛 애인 윤애를 만나 그녀를 농락하려다 그만두고 포로로 잡힌 태식과 그녀를 풀어준다.

그 후 낙동강 전선으로 나간 명준은 간호원이 된 은혜와 재회하여 사랑을 맹세하지만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임신한 채 죽고 만다. 포로가 된 명준은 휴전 후,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제3의 중립국을 선택하지만, 중립국에 도착하기 직전 배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고 만다.

'광장'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고뇌하던 한 젊은이가 자살로서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소설은 인간이 왜 사회를 만들고 살아가며 그 안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이 왜 생겨나고, 그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 왜 발생하는지를 묻는다. 이런 주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바로 남북의 대표들 앞에서 명준이 중립국을 택하는 장면이다.

2008년 한국외국어대 정시논술 고사에서도 바로 이 대목이 제시문으로 출제되었다. 다만, 개인의 선택과 환경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작품을 읽어낼 것을 요구해 다른 문제와는 색다른 점이 돋보였다.

인간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서 선택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이 처한 환경은 그 선택의 폭을 규정한다. 예컨대, 명준의 경우,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후 남과 북 그리고 중립국이라는 세 가지 선택이 환경으로 주어졌다. 명준은 주어진 세 가지 선택지 내에서 자신의 가치 판단에 따라 중립국을 선택한 것이다.

개인의 선택의 기준이 되는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여러 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의 기준은 일반적, 공통적이지 않고 각자의 이성적 판단이나 주관적 가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앎이나 주어진 환경에 맞춰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며, '참'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 '광장'에서 명준이 생각하는 중립국과 공산군 장교가 생각하는 중립국은 그 판단의 기준이 서로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명준은 중립국이 남한이나 북한과 다른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광장이라고 생각했고, 공산군 장교는 중립국 역시 자본주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는 가정하에서 인간의 행위는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행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택에 작용한 가치관 또는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한다. 또한 주어진 환경―가령, 사회적 가치관이나 시대 상황―이 그 선택에 미친 영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문학작품을 읽어 내는 데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논술고사에서 출제되는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은 심층적인 사고를 요구하므로 이와 같은 안목을 갖춰야 효과적인 논제 해결이 가능하다.

변혜경 ㈜엘림에듀평가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