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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4년 전 이맘 때, 난 정치부 기자였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을 출입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열린우리당과의 분당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어진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출…. 정치적 격변의 현장을 곁에서 지켜봤다.
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국회의원, 보좌관, 당직자 등 정치인들과 함께 보냈다. 그들과 함께 얘기하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때론 그들과 함께 술도 마셨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을 읽으려 애썼고, 앞으로의 지형 변화를 내다보려 애썼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정치인처럼 사고하려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처지에서 득실을 따져보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직전인 사회부 기자 시절, 서민과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고백하건대 난 ‘좋은’ 정치부 기자가 아니었던 듯하다.
정치인의 시각으로 보도하는 정치부 기자들
18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치부 기자들은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정치인들과 함께 보낸다. 그리고 수많은 총선보도를 쏟아낸다.
매체가 다르고 기자가 다르건만, 최근 총선보도에는 비슷한 흐름이 있다. 공천을 둘러싼 당내 권력투쟁, 공천 이후에는 지역별 후보 움직임, 여론조사 결과 등에 대한 보도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2008총선미디어연대가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깊이 있는 정책보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등 몇몇을 제외하면 신문에서 정책보도는 아예 퇴화해 없어져버린 기관 신세가 된 듯하다.
일부 보수신문은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스스로 나서서 특정 사안을 쟁점화하거나 정책 검증을 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방송사들도 정책과 공약 보도는 뉴스 후반부에 배치한다. 그나마도 심층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공천과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직결됐을 테니 당사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다른 정파, 다른 정당의 움직임에 안테나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후보자 자신이 가장 궁금해한다. 요컨대 이런 부분과 관련된 보도는 정치인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다.
반대로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뉴스는 따로 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고 어떤 정당이 다수당이 되면 실제 내 삶은 어떻게 바뀌는지, 이야말로 유권자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또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정보다. 유권자들은 언론의 정책보도를 통해 이런 정보를 충분히 얻어야 한다. 투표권을 한번 행사하고 나면, 그에 따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선거 이후 대운하는 어떻게 되는지, 의료보험체제는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뉴스다.
유권자에게 중요한 뉴스 선택해야
정치부 기자들은 이번 총선보도에서 유권자보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뉴스를 선택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는 착각에서 비롯된, 왜곡된 선택이다. 정치인과 어울리며 어느덧 정치인의 시각을 갖게 돼버린 기자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유권자도 궁금해 할 거라는 착각.
오늘도 정치인 곁에 있는 기자들은 자신이 거기 있는 이유를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대표해서 그 자리에 있는 지를 말이다. 몸은 정치인 곁에 있어도 마음은 유권자와 시민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정치부 기자라는 명제, 이를 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더 중요한 뉴스로 총선보도 내용을 채워야 할지, 선택은 자명하다
서정민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 미디어국장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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