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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며칠 전 우리 현대 정치사 및 시대상을 대표하는 역대 정부 수반의 유적 6곳, 즉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던 경교장,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던 이화장, 장면 전 총리 가옥,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을 원형대로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를 대한민국 헌정사의 학습산실로 만들어 역사교육 및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고 했다.
정부수반 살던 집 복원 그나마 다행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왜 별안간 튀어나왔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요사이 정치인들의 공약을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아마 그런 것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잘 보존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관련 있는 문화재 건물의 관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경교장, 이화장, 윤보선 전 대통령의 종로구 안국동 가옥은 이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경교장은 지정은 해 놓았으나 관리 상태가 엉망이다. 그곳에 가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후면에 세워져 있는 고층 병원 건물이 경교장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저택 마당은 주차장이 돼 있어 오가는 환자들마저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 왜 그때 그 자리에 병원을 허가해 주었는지 지난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시는 병원 건물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인가.
장면 전 국무총리 가옥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얼마 전 총리가 재임 중 살던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이 헐릴 것 같다는 소문이 있어 서둘러 현장에 가 본 적이 있다. 집은 주민센터에서 아주 가깝고 길가에 위치해 있어 그쪽 주민들에게는 잘 인지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여기저기 훼손되어 있었다. 집은 온통 쓰레기통이었다. 이곳이 한때 정부 수반이 살던 집이라니….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더구나 그 집은 이미 개인에게 매각되었고 곧 새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 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당시 관계자 몇 사람이 앞장서서 이 헐리는 일을 막아내 보려고 노심초사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그 집은 헐리지 않고 근대문화재로 등록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근대 건축물과 근대 산업유산도 훼손돼 사라지고 있다. 근래 수년 동안 인지도 높은 건물들이 사라졌다. 유서 깊은 근현대사의 현장도 사라졌다. 산업사를 대변하는 공장, 옛 군부대 막사도 거의 다 사라졌다. 모두 새 공장과 새 부대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 오래된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필자가 관계 당사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라 부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지난날을 너무나 폄훼하는 말이다. 건물도 사람과 같아서 고쳐 가며 써야 하는 것이다. 오래 갈 수 있는 건물이란 아예 없는 것이다. 과거의 건물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우리 땅의 역사를 담은 현장인 것이다.
‘미래의 문화재’ 소중하게 보존을
더구나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마저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청의 경우도 그렇다. 현 서울시청 건물은 등록문화재인데 앞으로 새 청사를 지으면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좁은 터에 그 큰 규모의 새 청사를 세우려는 의도도 알 수 없지만 발표된 안을 보면 기존 문화재 건물도 새 건물의 규모에 압도되어 초라해질 것이 뻔하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 익숙해진 건물은 존재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도 철거하고 이제 국적 없는 건물을 세우려 하고 있다. 새로운 것이 다는 아니다.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질 때 보기에도 좋지 않겠는가.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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