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교과서 뒤집어읽기]‘용부가’

설경. 2008. 5. 14. 20:32
[동아일보]
'나'를 잃어버린채 삼종지도에 한숨지은 조선여인
당호뿐인 신사임당, 이름은 온데간데 없이…
생각의 시작: 착한 여자라는 것은?
한국에서 여성의 미덕은 무엇인가? 순종, 인내, 희생이다. 심지어는 삼종지도(三從之道), 즉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게 여자의 미덕이라고 한다. 이런 관계망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가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여성의 본성을 억압한다. 오로지 모든 허물을 인내하고 감싸 안는 '모성'만이 정당한 선으로 간주된다. 여성성이 죄악으로까지 치부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여자는 없고 어머니만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왜 '규원가'의 작가 허난설헌은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살다 갔는가?
문장가로서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그녀,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녀. 조선은 그녀의 그런 자유로운 본성을 매우 위험한, 혹은 불순한 요소로 인식한 것이다.

규원가의 한 구절을 보자.
이 어찌 사대부가의 여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소위 화류계의 기생들, '매향이, 초월이', 이런 이름이 더 어울리는 음탕한(?), 아니 본능에 충실한 진솔한 표현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가진 아내, 혹은 며느리가 가부장적 가치관, 유교적 가치관으로 완전 무장된 가문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더군다나 그녀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바로 아들의 부재였다. 조선시대 여성이란 존재로서의 입증요소, 바로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문장이 중국에까지 미쳤던 탁월한 지성을 지녔던 한 여자가, 인간의 본성으로 사랑을 원했던 감성적인 한 여자가, 사랑을 갈구한 대가로 음탕함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야 했다. 오직 한 '아들'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은 어떤가? 조선시대, 아니 현대에까지 가장 칭송받는 여성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신명화, 그녀의 남편은 이원수, 그녀의 아들은 율곡 이이다. 그럼 그녀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다만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의 당호 사임당일 뿐이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이 고대 전설 속의 인물이던가? 그녀의 이름은 없다. 이름이 존재를 드러내는 표상이라면 오직 그녀에게는 아들을 잘 키우겠다는 다짐의 당호만이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자. 사임당이 이이의 '어머니'일뿐인가?
거꾸로 보기: 나쁜 여자라는 것은?
'용부가'는 사대부가 여인의 온갖 만행(?)과 부도덕한 행위를 제시하면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고자했던 경세적 성격을 지닌 가사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꾸지람이며, 가르침이다. 못된 행동 저 반대편에는 여자가 지켜야 할 아름다운 덕목이 자리한다. 그러나…. 다음 작품을 보자.

조선시대 가치관에 비추어보면, '세상에 저럴 수가…'이다. 정말 못됐다. 참으로 불온한 여자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표면적인 말 뒤에 숨어 있는 화자의 숨소리를 들어보자. 언어 저 편의 진실이 느껴질 것이다. 본성을 억압당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어머니'가 아니면 드러낼 수 없었던 그 팍팍한 시절에 이렇게 '막 행동'을 하는 사대부가의 여인이 있었다면? 그 행위는 금기를 깨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심지어 통쾌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억압의 전통은 유구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도 억압의 가치는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사상의 자유, 행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면서….

이은숙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 '용부가' '규원가'에 관한 상세해설과 허난설헌, 신사임당에 대한 더 많은 설명은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 있습니다.